[오늘과 내일]이도성/큰일 낼 사람들

  • 입력 1997년 7월 15일 20시 11분


말그대로 난장판이다. 후보간 원색비방, 흑색선전물 난무, 지역감정 부추기기, 분별없는 전직 대통령 찬양, 당지도부와 후보간 해당행위 논란에다 돈봉투살포 싸움이 터진 끝에 급기야 「검찰 앞으로」라는 소극(笑劇)까지 벌어지고 있다. 신한국당 대통령후보를 뽑는 경선 얘기다. 따지고 보면 이상할 것도 없다. 충분히 예상했던 대로다. 명색이 집권당이지 신한국당은 정당으로서 제 구실을 하기에는 몇가지 근원적 결함을 안고 있는 정치집단이다. 당원 당간부 당사 등 외형(外形)은 그럴듯하나 정당이 국민적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내실(內實)은 눈을 씻고 보려해도 보기 힘들다. ▼ 너죽고 나죽기式 與경선 ▼ 우선 「정체성(正體性)」이 보이지 않는다. 도대체 국민에게 어떤 「내일」을 기약하겠다는 것인지 종잡을 수 없다. 이는 어느날 갑자기(90년1월) 정치적 혈통이 판이한 세개의 정당이 오로지 권력을 장악, 유지하겠다는 일념하에 합당을 결행한 태생적 한계의 귀결이다. 정체성의 혼돈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지난해 총선을 앞두고는 「표가 될만한 사람들」, 이른바 「영입파」들로부터 수혈까지 받으며 당이름도 바꿔버렸다. 당의 내력이 이러한데 18년전 당총재(金泳三·김영삼대통령)를 국회에서 쫓아내고 정치적 탄압을 가한 朴正熙(박정희)전대통령을 추켜세우며 그를 닮겠다는 경쟁이 나온들, 全斗煥(전두환) 盧泰愚(노태우)전대통령 찬양론이 나온들 뜻밖의 일로 볼 것도 없다. 정체성은 그렇다 치고 어떤 방향이든 당을 끌어갈만한 내부적 「리더십」도 사실상 실종상태다. 후보까지 줄세우기를 하겠다는 내부 집단이 한동안 기승을 떠는 등 누가봐도 「상도(常道)」를 벗어나는 일들이 속출해도 적기에 제어할만한 힘도 없어 보인다. 흡사 선장도 조타수도 손을 놓고 제 몫을 못하는 가운데 난기류와 거친 파고에 휩싸인 듯한 전함의 모습이다. 실체가 이러한 당의 경선에서 21세기니, 세계화니, 통일이니, 정치개혁이니, 경제살리기니 하는 국가적 화두(話頭)가 어울릴 리 만무하다. 판을 치는 건 오로지 「승리 이데올로기」에 집착, 「너죽고 나살기」를 넘어 「너죽고 나죽기」 식의 전투기법들 뿐이다. 드러내놓고 지역색을 조장하는가 하면 「여기서는 이 말」 「저기서는 저 말」식의 하루살이 정치도 다반사다. 그래서 『저런 사람이 무슨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왔어』 『우리가 사람을 잘못 봤네』 『어, 저 사람 뽑으면 큰 일 나겠네』라는 얘기들이 갈수록 무성해진다. 문제는 후보의 양(量)이 아니라 질(質)이 검증된 흔적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데 있다. 그래도 한 나라의 국정을 책임지겠다고 나서려면 객관적 검증에 앞서 우선 스스로 역량과 자질과 준비상태를 질문해봐야 한다. 우리 정치판에서 그런 기대를 거는 것이 과하다면 최소한 「할 말」 「안할 말」을 가릴 줄 아는 정도의 분별력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 역량-자질 自問해 보길 ▼ 여당의 대선후보 경선은 당내 행사이기도 하지만 좋든 싫든 국민적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국가의 안위와 민생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전당대회를 닷새 앞둔 오늘, 승부의 향방은 오히려 관심의 뒷전으로 밀려나는 분위기다. 지금 다시한번 스스로를 되돌아 보고 자중하지 않을 경우 누구 가릴 것 없이 「새 정치의 기수」가 아니라 「정치사를 후퇴시킨 장본인들」로 기록될 것임을 후보들은 분명히 알아야 한다. 이도성(정치부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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