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수필]박찬호/도심속의 채소밭

  • 입력 1997년 7월 7일 08시 20분


한 3년쯤 전인가. 수도관이 낡아 교체공사를 하면서 정원에 깔아 놓았던 잔디를 모두 걷어버리고 남새밭을 만들었다. 봄에 상추와 쑥갓 근대 아욱을 심고 그 사이로 드문드문 토란을 심었다. 양 옆으로는 오이와 가지 모종을 사다 심고 모과나무와 대추나무 밑 응달에는 머위 뿌리를 구해다 묻고 한쪽에는 취나물씨를 뿌려놓았다. 첫해에는 생땅이라 그랬던지 별로 성장이 좋지 못해 비료를 주기도 했지만 이제는 비료 없이도 무럭무럭 자라나는 옥토가 되었다. 어떻게 하면 화학비료를 쓰지 않고 채소를 가꿀까 생각하던 중 부엌에서 나오는 음식물 찌꺼기를 모아 밭에 묻어 주었더니 아주 비옥한 땅으로 변해 무공해 채소가 소담스럽게 자란다. 끼니 때마다 아욱을 한 주먹씩 뜯어다 국을 끓이고 상추쌈도 싸 먹는데 그 싱싱함과 구수함을 어디 시장에서 사다먹는 채소에 비할 수 있으랴. 그뿐인가. 아침 저녁으로 물을 주면서 가꾸는 재미 또한 금상첨화다. 잡풀을 뽑아주고 북을 돋워주면 수런수런 자라는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고 풋풋하고 싱그러운 냄새가 온 집안을 감싸주기도 한다. 밥숟갈 넓이만 하던 상추잎이 하룻밤 사이에 손바닥만하게 커졌는가 하면 풋고추만 하던 오이가 한뼘 남짓 자란 것을 보면 자연의 신비에 고개를 숙이지 않을 수 없다. 한번은 작은 며느리가 상추를 뜯다가 뽀얗게 솟아나오는 진을 보고 신기한듯 소리를 쳤다. 『상추에서 하얀 진이 나오네요』 잎이 파랗기 때문에 진도 파랄줄 알았다는 것이다. 주말에 손자 손녀가 오면 상추 아욱 오이 가지 등을 일일이 가르쳐 줘야겠다. 그리고 싱싱한 채소를 한 움큼씩 뜯어주면 며느리들의 입이 벌어지겠지. 오후에 큰 며느리가 들른다고 했으니 아욱과 상추를 뜯어주고 가지도 좀 따줘야겠다. 올 가을에는 토란을 캐면서 풍성한 수확의 기쁨도 맛볼 것 같아 벌써부터 마음이 푸근하다. 박찬호(서울 관악구 신림3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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