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며 생각하며]조동성/「사회 디자인」

  • 입력 1997년 6월 23일 20시 04분


지난해에 학부생들을 대상으로 「디자인경영」과목을 개설했다. 한국경제가 후진국에서 중진국 수준으로 발전하는데 과학기술이 필요했듯이, 이제 선진국 수준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디자인 능력이 필수적이라는 것을 미래 경영자들에게 인식시켜 주자는 목적에서였다. 그런데 강의 준비 과정에서 디자인을 새로운 관점에서 보게 되었다. 우리에게 아름다움을 느끼고 편의성과 풍요로운 삶을 누리게 해주는 디자인은 제품 환경 시각적인 객체뿐 아니라 우리가 속한 모든 사회 조직에도 적용할 수 있다는 깨우침을 얻게 된 것이다. 가족제도에 내재하는 디자인을 찾아보자. 고대 모계중심의 일처다부제 사회는 현대에 와서 일부일처제로 바뀌었지만, 중동을 비롯한 일부 지방에는아직도일부다처제가 존재한다. ▼ 흔들리는 구성원간 질서 ▼ 한국도 전통적인 삼세대 가족에서 부모자녀로 이루어진 핵가족으로 변했고, 구미 선진국에는 자녀 없는 부부만으로 구성된 가족도 흔하다. 국가 권력에 관한 디자인으로서는 고대 사회에서부터 현대 군주국가에 이르기까지 장자세습이 가장 보편적인 승계방식이었다. 반면에 신라에 존재하던 화백제도나 고대 로마의 원로원, 그리고 영국 아서왕과 원탁의 기사들이 구성한 정부 형태는 권력자의 본능을 극복하고 구성원들의 합의를 앞세운 민주적인 디자인이었다. 그러나 몽테스키외가 「법의 정신」에서 주창한 3권분립 제도야말로입법사법 행정부가 국가권력을 나누어 행사하며견제와균형을 통해 민주주의를 확립하고인류를 발전시키는데 큰 공헌을 해온 정부 디자인이라 할 수 있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조직인 기업은 17세기 초네덜란드 국왕이 자본을 제공한 상인과 직접 항해를 담당한 선장이 모인 「피르마」(Firma)에 국가의 보호를 약속한데서 출발하였다. 자신이 내놓은 자본만큼의 유한책임을 가진 주주와자신의 행위에 대한 무한책임을 지닌 전문경영자로 구성된 주식회사가 디자인된 것이다. ▼ 정부조직등 새 틀 짜야 ▼ 이같이 우리 삶을 지배하는 모든 제도는 오랜 관습이나 특출한 아이디어를 가진 인물, 또는 시대적 상황속에서 구성원이 추구하는 목적을 달성할 수 있도록 디자인된 결과다. 이제 이같이 넓은 의미의 디자인을 「사회(社會)디자인」이라고 부르자. 최근 한국의 사회디자인에 근본적인 한계가 나타나고 있다. 가족 형태를 보면 23%라는 이혼율이 보여주듯이 유교윤리에 바탕을 두어온 가족 구성원간의 질서가 붕괴하는 조짐이 보인다. 정부 역시 3권 중 하나인 행정부의 대표에 불과한 대통령이 헌법에 정한 견제조직이 무력화된 가운데 절대적인 권한을 행사하며 민심을 경시하는 모습을 보인다. 기업에서도 경영권을 장악한 대주주가 전문경영자를 머슴으로 부리면서 소액주주의 권리를 유린하고 있다. 이제 우리 사회는 가족 정부 기업에 대한 기존의 틀을 버리고 구성원간의 관계를 새로 디자인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단 국민이 진정한 권리를 찾고 원하는 행복을 누리기 위해서는 새로운 「사회디자인」을 시간의 흐름이나 특정 인물에게 맡길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 뜻과 노력을 합쳐 함께 만들어내야 한다. 조동성(서울대교수·경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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