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인성교육현장]교실서 익히는 민주주의

  • 입력 1997년 6월 23일 07시 49분


벨기에 브뤼셀의 노틀담초등학교 3학년인 제시카(8)는 며칠 앞으로 다가온 투표가 걱정됐다. 이 학교는 가톨릭계통이기 때문에 매월초 교내에서미사가있고이때 학생 한명이 자작시를 발표하는게 관행. 제시카는 이번 미사에서 시를 발표하기 위해 일주일 전부터 준비했는데 평소 친하게 지내던 다비치도 발표하겠다고 나섰다. 결국 시를 먼저 보여준 뒤 누가 발표할 것인지를 놓고 투표를 하게 된 것. 제시카는 『다비치를 이길 것으로 기대하지만 친구들이 만약 다비치를 선택해도 결과에 따르는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이 학교에서는 학생들간의 의견을 조정하기 위한 투표가 일상화돼 있다. 봉사활동 환경보호 물자절약 등과 관련해 매년 초 중점적으로 추진해야할 일에 대해서도 각자의 안을 내고 투표로 결정한다. 올해는 많은 학생들이 학교앞에 횡단보도를 설치하자고 제안, 지방정부에 건의서를 내 답변을 기다리고 있다. 영국 런던의 체스터톤 초등학교에서는 교사들이 일반과목 수업시간에도 학생들에게 민주주의 소양을 길러주기 위해 신경을 쓴다. 1학년을 맡고 있는 마하피교사는 미술시간에 스케치만 해놓은 풍경화를 들고 학생들에게 지붕에 무슨 색깔을 칠하면 좋을지를 물었다. 두 학생이 각각 빨간색과 노란색이 좋다는 의견을 냈다. 마하피교사는 두가지 색깔을 투표에 부쳤다. 노란색이 과반수를 넘었다. 10여분 후 이런 방식으로 여러 색깔이 어지럽게 칠해진 「추상화」가 완성됐다. 마하피는 학생들에게 각 부분의 색깔이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그 이유를 차근차근 설명했다. 그리고는 다시 똑같은 밑그림이 그려진 종이를 꺼내 학생들에게 색깔을 선택하게 했다. 마하피는『처음에는색상의조화가 없는 무질서한 그림이 나오지만 반복할수록 그림의 완성도가 높아진다』며 『모든 교과시간에 이렇게 학생들의 의견을 모으는 소양교육을 실시하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영국 옥스퍼드의 웨스트키들링턴초등학교 4학년인 케리(9)는 최근 연습장 한장을 「다시는 교실안에서 뛰지 않는다」는 말로 가득 채웠다. 「우리학급규칙」을 어겼기 때문에 케리 스스로 반성하는 뜻에서 쓴 것이다. 학기초에 케리의 학급은 토론을 거쳐 교실내 질서를 지키기 위한 10가지 규칙을 투표로 결정했다. 「뛰지않기」 「단정하게 옷입기」 「큰소리 지르지않기」 등 규칙을 도화지위에 쓰고 밑에 학생들의 이름을 적어 교실입구에 붙였다. 규칙을 하루에 세번 이상 어길 경우 서명밑에 줄을 그어 조심하도록 하고 있다. 벨기에 남부 네이머시 소재 왈로니교육부는 민주주의교육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왈로니교육부는 3년전부터 프랑스 등에서 극우정당이 많은 표를 얻고 있는 것에 자극받아 학생들에게 민주주의의 소중함을 가르치기 위해 이 교육센터를 건립한 것. 이곳에서는 10∼18세의 학생들에게 자치정부의 기능과 선출직공무원들이 하는 일에 대해 가르치고 있다. 책임자 트롤린은 『이러한 교육을 통해 국민이 스스로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극우정당이 집권해 제2차세계대전과 같은 비극이 재발할 수 있음을 깨닫게 하는 데에 주목적이 있다』고 말했다. 오블레초등학교 5학년인 이블린은 최근 학교 친구들과 함께 이곳에서 시의원을 뽑는 모의투표에 참가, 투표지 접는법 등 투표규칙을 익히기도 했다. 이블린은 『소중한 한표를 행사하기 위해서는 규칙을 꼭 지켜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런던·옥스퍼드·브뤼셀·네이머〓한정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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