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대]공병호/사회개혁과 기업 불신

  • 입력 1997년 6월 7일 09시 15분


최근 경제난국의 와중에 일부 노동단체가 경제난의 책임을 규명한다는 차원에서 사회개혁을 주장하고 나섰는데 이번에도 개혁 대상에는 재벌이라 불리는 대기업들이 어김없이 포함되었다. 노동단체들은 경제난의 주범이 대기업이라는 논리를 펴고 있다. 그들의 주장을 종합해보면 대기업 비판의 단골메뉴는 소유와 경영의 분리와 정경유착의 근절 등이며 그 귀결은 재벌해체론으로 모아지고 있다. 더 나아가 노골적으로 특정기업을 공격대상으로 삼는 일도 공공연히 전개되고 있다. 특정기업을 비방하는 포스터를 공공장소에 부착하기도 하고 시장경제 자본주의 체제를 위협하는 걱정스런 언행도 일삼고 있다. 이같은 노동단체의 주장과 행동에 일부 시민단체들도 동조하고 있는 것 같다. 필자는 이같은 현상을 보면서 중세시대 유럽사회를 휩쓸었던 「마녀사냥」을 떠올리게 되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한 사회의 위기나 어려움 그리고 불만을 해소하기 위해 소수의 특정집단을 선택해서 한풀이를 행하는 것은 비단 서양에만 국한되는 일은 아니었다. 냉전의 붕괴로 이미 이데올로기 싸움은 결판이 나 나라마다 기업을 앞세운 경제전쟁으로 필사적인 지금 우리나라에서 기업집단을 지속적으로 연구하며 경제전쟁에서 이길 방책과 전략을 내놓는 전문가들은 그리 많지 않다. 필자의 눈에 기업비판에 앞장서는 운동권적 전문가들의 논리는 너무 정치적이고 감정적으로 보인다. 필자도 물론 기업들이 무조건 잘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경제난의 「주범」이 재벌이라는 일부 노동단체의 주장은 지난 93년에도 그 당시 시류를 타고 일부 식자들의 지지를 받았던 적이 있다. 그러나 당시 기업에 강제됐던 부동산 매각조치나 각종 규제조치들이 끼친 폐해는 지금까지 부작용을 낳고 있지 않은가. 경제난은 턱없이 오른 각종 생산가격과 생산성의 저하 등 총체적인 경쟁력의 약화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곳에서 속죄양을 찾기에 열심인 사람들을 보게 된다. 또 우리의 현실경제는 아직 소유와 경영의 분리를 전면적으로 수용하기 어렵다. 모든 것은 환경에 대한 적응 즉 진화의 산물이다. 사람들은 관념의 세계와 실제의 세계를 혼동하는 잘못을 범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가 인정해야 할 것은 다수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이라도 진리와는 거리가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사회정의를 위한 개혁론의 이면에는 포장된 집단의 사익추구가 숨어 있는 경우도 적지 않다. 노동조합은 근로조건을 개선하고 조합원의 이익을 추구하는 이익단체다. 그런데 이같은 본분보다도 노동조합의 정치세력화에 더 열을 올리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우리는 사회정의나 경제정의를 내세우고 추진됐던 개혁이 순수성과 현실성을 외면한 나머지 실패하고 도리어 국민적 부담을 초래한 역사적 아이러니를 많이 보아 왔다. 현란한 구호나 편향된 논리의 유럽역사에서 그 이면에 숨겨진 의도성과 그에 따른 사회적 비용을 인식해야 한다. 왜냐하면 기업을 감정적인 차원에서 비판 공격만 한다면 그 결과는 우리 국가의 경쟁력 약화는 물론이고 그 부담이 고스란히 국민에게 전가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공병호<자유기업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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