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IAEA의 한국 망신살

  • 입력 1997년 6월 5일 20시 06분


국제원자력기구(IAEA)에서 4일 한국과 개인 鄭根謨(정근모)씨가 겹망신을 당했다. IAEA사무총장을 선출하는 투표에서 정부의 불출마 권유를 뿌리치고 끝까지 버텼던 정씨는 비참한 결과를 맛봐야 했다. 멀리서 이 과정을 지켜본 기자는 안타까웠다. 정씨는 두차례나 장관을 역임했고 국제원자력계에서도 지명도가 높으며 국내에서도 시민활동에 앞장서는 독실한 기독교인이다. 그만한 지성인을 찾아보기도 쉽지 않다. 그러나 이번 일을 놓고 보면 정씨는 국민의 신망을 저버렸고 개인명예도 추락했다. 냉정하게 판단해 보면 이번 망신은 안당할 수도 있었다. 그동안 전개된 상황을 보면 평범한 사람이라도 당선이 어렵다는 판단이 나왔었다. 그러나 정씨는 정부가 후보추천을 거부하자 몽골과 카메룬의 추천으로 후보등록을 하는 편법을 썼고 원자력단체와 일부 국가들이 자신을 지지하고 있다며 선거운동을 하고 다녔다. 그러나 결과는 33대 0. 투표에 앞서 그가 자신하던 10표는 물론 동정표조차 없었다. 그가 비장의 카드라며 투표전 연설에서 내세운 이집트후보에 대한 자격시비와 투표연기주장도 『아프리카그룹의 추천을 다수 회원국의 의사를 반영한 것으로 본다』는 IAEA대변인의 한마디로 일축됐다. 정씨는 더욱 구차하게 나갔다. 『이번 선거가 불공정하기 때문에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하겠다』는 정씨의 발언이 알려지면서 조소가 담긴 답변을 들어야 했다. 물론 정부에도 문제는 있다. 외무장관이 그를 만나 사퇴를 설득했고 대통령까지 나섰으나 출마를 끝내 막지 못했다. 정씨는 IAEA의 분위기를 잘 안다. 유엔산하 전문기구이지만 정치기구라는 점을, 또 사무총장이나 연차총회의장 선출은 투표보다 합의에 더 무게를 두고 있다는 것을. 특히 남한출신 인사가 사무총장이 될 경우 북한핵문제가 꼬인다는 미국의 견해와 이를 수용한 한국의 입장도 그는 누구보다도 더 잘 안다. 첫번째 과학기술처장관 재직시를 전후해 북한 핵문제가 얼마나 민감하고 국제사회에서 시끄러웠던가를 정씨는 충분히 경험했다. 평범한 국민도 개인이익과 국가이익중 어느것이 더 우선인가를 안다. 그러나 정씨는 그러지를 못했다. 김상철<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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