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자 노트]떠나고 빈자리

  • 입력 1997년 6월 5일 09시 48분


지난 목요일 아침. 회사에 출근해보니 책상위에 누런 책 봉투가 놓여있다. 봉투에는 꽃피는 4월에 서른네살 나이로 갑자기 세상을 떠난 작가 김소진의 마지막 소설집이 담겨있었다. 책을 훑어보려는데 그안에서 동료 소설가이자 그의 아내의 이름으로 인쇄된 짧은 인사장이 툭 떨어진다.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지켜주신 분들께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다시 일어서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고개 숙여 감사드리며」. 편지 끝에 적힌 「고 김소진의 처」라는 생소한 말이 너무 슬프고, 책 표지에서 선하게 웃고 있는 고인이 눈앞에 서있는 듯해서 금세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바로 1년 전이었던가. 신촌의 출판사에 다니는 아내와 근처 사무실에서 글쓰던 남편이 점심때 마다 도시락을 함께 먹으며 데이트한다는 기사를 썼던 것이…. 웃는 모습이 닮아 인상적이던 부부작가와 요즘 아이처럼 나대지도 않고 수줍어하던 세살배기 아들. 조용히 살아가는 그들의 행복을 온 천지에 떠벌린 것이 하늘의 시샘을 받게 한 건 아닌지 가슴이 오그라드는 기분이었다. 한때 문학담당기자로 일했던 내게 젊은 죽음은 이제 낯설지 않다. 10년 전 어느 일요일 아침 집으로 걸려온 전화는 민중문학의 깃발을 높이 세웠던 한 문학평론가의 교통사고 소식을 전해주었다. 그는 서른아홉살이었다. 2년 뒤 어느 봄날 아침 출근준비를 서두르던 중 겨우 스물아홉에 우리 곁을 떠난 시인의 급작스런 부음도 들었다. 안타까운 이별은 하나둘 이어졌다. 그리고 김소진. 다들 빛나고 재능있는 사람들이었다. 해야 할 일도 많고 써야 할 작품도 많은…. 일을 통한 만남이었지만 먼발치의 내게도 그들의 그림자는 컸다. 떠난 이들의 빈자리는 문학동네 안과 바깥에서 쉽게 메울 수 없을 것 같다. 시간이 흐를수록 작품만은 영원한 생명력으로 남을 것이라는 믿음이 작은 위안을 줄 뿐. 삶이 귀한 것도 모르고 고마운 마음도 없이 그날그날 시큰둥하게 스쳐가는 일상. 그렇게 인생을 내팽개치듯 허비해서는 안된다고 나지막하게 꾸짖는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오늘 하루를 어떻게 살 것인가. 재능도 없고 세상에 기여한 바도 없으면서 나태한 자신이 부끄럽다. 고미석<생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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