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야당의 선택

  • 입력 1997년 6월 1일 20시 25분


金泳三(김영삼)대통령의 5.30담화가 표류정국의 불길을 잡기는커녕 오히려 확산시킨 것은 유감이다. 92년 대선자금을 둘러싼 여야대치는 담화 이전보다 훨씬 가팔라졌고 국민불안도 높아졌다. 여야가 사력(死力)을 다해 상대를 치고 받는 이 싸움의 끝이 어디가 될지 가늠하기 어렵고 이러다 결국 파국에 이르지 않겠느냐는 걱정들이 많다. 여야는 오늘 3당 총무회담을 열어 정국수습 방안과 6월 임시국회 소집문제를 논의키로 했으나 양측의 입장차이가 워낙 첨예해 또 한차례 말싸움으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 우선 야권은 대선자금 규명을 위한 국회 국정조사 및 청문회 개최와 특검제 도입요구가 받아들여져야만 임시국회 소집에 응한다는 방침이다. 반면 여당은 대선자금 논란은 일단락짓고 앞으로 고비용 정치구조 개선작업에 나서자며 야당이 내건 국회소집 전제조건을 수용할 수 없다고 못박는다. 대선자금문제가 또 국회를 볼모로 잡은 것이다. 일이 이렇게 된 데는 김대통령의 책임이 크다. 국민은 그동안 김대통령이 담화를 통해 대선자금과 한보의혹의 모든 것을 진솔하게 털어놓고 사과해 한보터널에서 벗어나기를 기대했었다. 그러나 담화내용을 보면 대통령은 이런 민심을 몰라도 너무 몰랐다. 진의(眞意)도 분명치 않은 「중대 결심」 발언으로 야당을 자극하고 많은 사람에게 불쾌감을 주었다. 다소 포괄적이더라도 솔직한 입장표명만 했다면 지루한 정쟁(政爭)을 마감하고 경제와 민생에 눈돌리자는 여론이 자연스럽게 형성될 수도 있었는데 그 좋은 기회를 놓쳐버렸다. 그런 점에서 야당의 반발은 이해할 수 있다. 대선자금 문제는 김대통령 재임중이든 언제든 꼭 규명해야 할 과제임이 분명하다. 다만 언제까지나 이 문제에 매달려 국정표류를 방치하고 국회문도 열지 못한 채 논란만 거듭할 것이냐가 문제다. 지금 상황으로 봐서는 대통령이 다시 또 입장표명을 할 것 같지가 않다. 여당이 국정조사나 특검제를 수용하리라고 기대하는 것도 무리다. 92년 대선자금의 실체는 철저히 규명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정국이 이렇게 한없이 표류하도록 놓아둘 수도 없다. 국민중에는 대선자금과 관련해 현정권에서는 더이상 기대할 게 없으므로 법적 정치적 책임문제는 다음 정권으로 넘기고 우선 나라일부터 챙기자는 주장도 많다. 경제와 민생을 걱정하는 목소리들이다. 6월 국회는 그동안 밀린 각종 민생법안을 처리하고 돈안드는 대선을 위한 제도개선작업을 할 수 있는 사실상 마지막 기회다. 9월 정기국회는 대선에 임박해 열리므로 정상운영이 어렵다. 야당은 과연 이 시점에서 어떻게 하는 것이 국민과 나라를 위하는 길인지 깊이 생각해주기 바란다. 파국을 원치않기는 야당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지금 정국을 풀 수 있는 열쇠의 절반은 야당이 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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