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김용택/교사를 절망시키는 것들

  • 입력 1997년 5월 14일 20시 34분


나는 지난 28년동안 교사로 살았다.

나는 교육을 하면서 불행하게도 이 땅의 교육에 대해 낙관보다는 비관을, 희망보다는 절망을 느끼며 지냈다.

▼ 「로봇」을 강요하는 제도 ▼

내가 교사가 된 2년 후에 유신이 선포됐다.

나는 유신이 아니면 그 어떤 것도 용납이 안 되는 세상에서 국민교육헌장의 글자 수가 몇 자인지 감사에 대비해서 외워두어야 했다. 멸공과 새마을과 유신 속에서 운동회 때도, 졸업식 축사에서도 반드시 이 세 개의 낱말이 들어가야 했다. 대통령은 바뀌지 않았지만 장관 교육감 교육장 장학사 교장은 자주 바뀌었으므로 그들이 바뀔 때마다 교실 뒷벽 환경 정리물을 바꿔야 했다. 선생은 자존심도 쓸개도 없는 로봇들이었다. 요즘 그때 그 시절을 찬양하는 소리가 들리는데 무슨 해괴한 소리인지 모르겠다. 역사는 추억이 아니다.

유신이 끝나고 「새 시대」가 왔다. 국민투표를 승리로 이끌기 위해 관계기관과 함께 선생들이 동원됐다. 아이들을 일찍 돌려보내고 읍내로 경제교육 정화교육 신정쇠기교육을 갔다. 가관이었다. 모욕이었고 코미디였다. 4.13호헌철폐서명이 있었다. 그때 받은 인간으로서의 모욕들을 난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나에게 「삶이 저렇게도 될 수 있구나」하는 부끄러움을 가르쳐준 사람들이 지금도 당당하게 열린교육을 외치며 교육계를 주름잡고 있다.

그리고 보통사람의 시대가 되었다. 보통사람의 시대가 되더니 그 보통사람이라는 용어가 교장선생님의 입을 떠날 줄 몰랐다. 그 말이 또 이데올로기가 되어 사방에서 허튼춤을 추며 선생들을 괴롭혔다. 직원 조회시 하달되던 대통령의 지시사항을 들으며 우리들은 얼마나 자존심이 상해 하루 종일 수업을 망쳐먹었던가.

문민시대가 되어 시간이 조금 지나니 작년부터 느닷없이 열린교육이 교육계를 강타하고 있다. 열린교육에 대한 준비도 없이 열린교육의 시대가 마침내 열린 것이다. 열린교육에 대한 교육을 받기 위해 어떤 교사는 한 달에 15일을 출장간다. 선생님들은 점수를 따고 승진을 위해 교장의 명령을 거역하지 못한다. 한 술 더 떠서 출세를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 교사들은 점수가 많은 지역으로 몰린다. 점수를 따기 위해 다른 지역의 연구논문을 적당히 버무리고 짜깁기해 점수를 관리한단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으나 한때는 선생님들 연구논문 대필업이 융성했었다는 것을 나만 모르고 있었다. 나는 절대 그 선생님들의 출세가도를 훼방놓거나 말릴 생각은 없다. 다만 그렇게 되도록 해 놓은 제도를 두고는 이 나라의 교육에 희망을 걸 수 없다는 것을 말하고 싶을 뿐이다.

▼ 교육현장에 변혁 있어야 ▼

15명이 전부인 작은 분교 선생인 나까지 나서서 작금의 우리나라 현실에 교육을 비추어 사람들의 마음을 더 어지럽힐 생각은 없다. 단언하건대 교육을 무슨 기발한 아이디어로 생각하고 출세의 도구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판을 치고 교육을 정권유지의 수단쯤으로 생각하는 정치가들이 있는 한, 자기 자식만을 생각해서 촌지를 주는 부끄러운 손이 있고 세상이 저러한데 이까짓 푼돈쯤이야 하며 돈을 받는 당당한 손이 있는 한 이 땅에 그 어떤 뛰어난 교육도 죽은 교육일 뿐이다. 이런 제도와 현실을 방치해 둔 채 세계화니, 인간교육이니, 국제경쟁력이니 하는 소리는 말짱 헛소리다. 교육현장을 이 따위로 망쳐놓고 세계화를 이야기한다는 것은 사과나무를 심어놓고 라면이 열리기를 기다리는 것과 같다. 상처받을 대로 상처받은 우리들의 자존심과 훼손될 대로 훼손된 민족의 자존심을 회복하고 끝장나 가는 인간성을 되살리는 길은 교육에 있다.

교육현장에 일대 변혁이 있어야 우리가 산다.

김용택 <전북임실운암초등교 마암분교 교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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