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나는 공부하러 박물관…」 펴낸 이원복씨

  • 입력 1997년 5월 13일 08시 36분


차갑게 싸한 계절이라야 천지를 온통 하얗게 물들이는 꽃, 눈꽃(雪花). 온갖 생명체들의 침묵 속에서 내일을 준비하는 엄숙한 순간 고갈과 경화(硬化)를 느끼는 정신과 마음은 눈꽃에 의해 부드러움의 힘과 의미를 깨친다. 그 눈꽃의 「향기」는 코가 아닌 눈으로 맡아야 한다. 눈꽃의 향기는 냄새가 아닌 귀로 듣는 것. 문향(聞香)의 경지다. 매일 「공부하러 박물관에」 가는 이원복씨(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관). 그는 조선조 田琦(전기)의 수묵화에서 매화의 암향 비슷한 또 다른 향기를 「듣는다」. 벗은 나무에 눈꽃을 입혀 무채색의 그윽한 아름다움으로 피워올리는 추상(抽象)의 세계에 젖어드는 것이다. 그가 책을 냈다. 「나는 공부하러 박물관에 간다」(효형출판). 21년 외길을 걸으면서 「읽은」 전통문화재의 숨결과 체취가 물씬하다. 『그림을 볼 때 독화라고 합니다. 명품과 걸작을 자꾸 들여다보면 작품 자체가 쉼없이 말하는 느낌이에요』 그의 명품이야기는 독특하다. 전통예술의 정수를 살을 발라내고 뼈를 깎아도 마지막 남는 그 무엇을 단 한마디 말로 전한다. 예컨대 신라시대 금관은 그에게「눈부심」이다. 『박물관에서만 사니 답답하지 않으냐고 묻는 이도 있지요. 그러나 비좁은 공간인 것은 사실이지만 거기 소장된 명품들은 제자리에 있지 않고 시대를 거슬러 「공간이동」을 합니다. 제한된 물리적 공간이 선인들의 작품을 매개로 한없이 「팽창」하는 거지요』 『박물관은 그저 쉬는 장소로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잠시 쉬러 와서 고요에 젖고 역사에 젖는다고 할까. 고요가 머무는 「여백의 시간」에 자신을 추스른다고 할까』 그러면서도 그는 박물관이 역사의 흐름 속에서 비켜서 있는 정지된 공간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혼란기일수록 역사의 침묵속에 담긴 의미를 되새길 필요가 있어요. 전통예술에는 오랜 시간 우리를 버텨온 생명이 녹아 있지요. 현재를 뚫는 에너지원이라고 할까요』 〈이기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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