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김현철청문회」대체 왜 했나

  • 입력 1997년 4월 25일 20시 11분


金泳三(김영삼)대통령의 차남 金賢哲(김현철)씨를 증언대에 세운 25일 국회 한보특위 청문회는 또한번 국민에게 실망을 안겨주었다. 전현직 대통령의 아들로는 처음으로 청문회에 서는 헌정사상 최초의 사건이었기 때문에 이날 TV를 지켜본 국민의 관심은 높았다. 그러나 청문회는 한보의혹의 진상이나 새로운 사실을 밝히기는 커녕 특위위원들의 형식적인 질문과 현철씨의 태연한 부인으로 일관됐다. 결국 허탈감과 함께 청문회 자체에까지 회의론이 제기되는 불행한 결과가 되고 말았다. 이날 청문회는 두달 이상 나라를 수렁으로 몰아넣은 한보비리와 현철씨 국정농단의 실체적 진실을 파헤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따라서 특위위원들은 여야를 막론하고 투철한 소명의식으로 신문에 임해야 했으며 장본인인 현철씨는 성실하고 솔직하게 진실을 밝혔어야 했다. 그러나 현철씨는 사법적 책임추궁이 사실상 어려운 인사개입문제에 대해서만 일부 시인했을 뿐이다. 논란의 핵심이 되고 있는 국정개입이나 92년 대선자금문제, 업체 이권이나 한보연루문제 등의 의혹에 대해서는 『그런 사실이 없다』는 부인과 『알지 못한다』는 회피성 답변만 했다. 이 때문에 침착하고 눈물까지 보인 반성의 태도조차 국민에게는 신뢰성을 주지 못했다. 더욱 한심한 것은 특위위원들의 노골적인 현철씨 봐주기 신문태도였다. 여당 소속 위원들은 신한국당 국정조사대책위가 작성한 것으로 알려진 「김현철관련사항」이라는 제목의 청문회지침을 철저히 준수라도 하듯 현철씨 누명 벗기기와 해명성 발언기회 주기에 급급했다. 현철씨에게 「충성경쟁」을 벌인다는 비난까지 나올 정도였다. 야당측 위원들도 진실추궁 자체를 포기하는 듯 했다. 답변이 뻔한 유도질문을 하는가 하면 증인이 부인할 때는 「증인이 아니라고 하니 그냥 넘어간다」는 식의 웃지 못할 장면도 연출했다. 비리나 의혹을 파고드는 것이 아니라 훈계조의 신문에만 열중했다. 결과적으로 현철씨 청문회는 「한보비리의 몸통」이라는 세간의 의혹을 파헤치기 보다는 그 몸통을 덮어버리는 데 기여한 해명성 통과의례가 되고 말았다. 「부인만 하면 그만」이라는 식의 청문회제도도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무엇보다 청문회 지침까지 마련한 여권이나 여야 특위위원 모두 국민의 비난을 피할 수 없게 됐다. 한보비리와 현철씨 의혹을 캘 수 있는 더 없는 기회를 소홀히 한 것은 특위위원들이 직무를 유기하고 국민의 여망을 배반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이제 국민의 시선은 다시 검찰로 쏠릴 수밖에 없다. 검찰이 현철씨 수사에 적극적으로 나서서 국민의 갈증을 풀어줘야 한다. 이미 검찰은 현철씨의 이권청탁 등 비리에 대한 단서를 포착해 수사를 좁히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검찰은 역사적 책임이 그들의 손에 넘어와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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