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며 생각하며]정희자/젊은이의 눈빛

  • 입력 1997년 4월 17일 20시 46분


힐튼호텔에는 전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이 들고난다. 그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을 위해 꽃을 고르고 음식을 챙기는 일이 내 일과다. 처음에는 한 번 보고 사람을 구별하기조차 힘들었지만 14년째 호텔을 경영하다보니 외국인의 외양만 보고도 그 삶의 역정을 어느 정도 읽어 낼 수 있게 됐다. 그들의 행동과 표정, 매너와 옷차림 하나하나가 판단기준이다. 고객들 누구하나도 소홀히 할 수 없지만 유독 젊은이들에게는 각별한 애정을 느낀다. ▼ 자신감 판단의 기준 ▼ 서울힐튼을 찾는 외국 젊은이들은 대부분 각국의 엘리트 비즈니스맨들이다. 모두들 단정하며 영어를 잘하고 일에 몰두한다. 이들은 아직 어떤 틀에 갇히지 않고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존재들이기 때문에 얼굴과 행동만 보고 그 과거를 상상해내기는 어렵다. 그래서 나는 외국 젊은이를 만나면 그 옷차림이나 행동의 품격보다는 눈빛과 표정을 주목한다. 거기에서 자신감의 차이를 읽는다. 자신만만하면서도 부드러운 표정이 배어나는 젊은이와 긴장으로 잔뜩 굳어버린 젊은이에게서는 단순한 차이를 넘어서는 어떤 격차를 느낀다. 그중에는 아예 시선을 피한 채 눈을 아래로 고정시킨 이들도 있다. 특정국가를 거명하기는 곤란하지만 나라마다 일정한 경향이 읽혀진다는 것이 솔직한 결론이다. 그래서 요즘에는 해외에서 우리 젊은이들의 모습이 어떻게 비쳐질까 상상해 보는 버릇까지 생겼다. 경주의 문화유적을 찾아 경주힐튼에 온 젊은이들에게서 차이를 읽어내는 기준은 조금 다르다. 눈빛과 표정에 행동양식이 더해진다. 세밀한 일정에 따라 역사를 공부하고 낭만도 만끽하는 젊은이들을 만나면 대견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예 동호인 모임을 만들어 사전에 연구한 사실들을 확인하고 문제의식을 정리해가는 외국 젊은이들을 만나면 내심 부럽다. 그러다가 한국연구에 열을 올리는 일본 젊은이라도 만나는 날에는 우리나라 청년들도 저렇게 힘을 기르고 있을까 하는 생각에 걱정이 되기도 한다. 반면에 아무런 준비없이 무계획적으로 이곳저곳 기웃거리며 맥없이 시간을 보내는 젊은이들은 실망스럽다.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그런 모습을 보일 때는 실망이 더 크다. 젊은이는 우리의 미래를 보여주는 거울이다. 그래서 젊은이들의 행동 하나하나에도 기쁨과 걱정이 교차한다. 지금 그들은 아웃사이더요, 비판자이지만 그 어깨에 나라의 운명이 맡겨질 날이 그리 멀지 않았다. 30대 젊은이라면 불과 10년 안팎의 세월이 남았을 뿐이다. 그때는 자리가 역전돼 「그들도 우리처럼」 기성세대의 위치에 서서 비판의 화살을 받아내야 한다. 얼마전 한 금융회사 경영자로부터 우리 젊은이들을 걱정하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하나같이 금융시장 개방을 염려하면서도 정작 개방이 가져올 파급효과와 대처방안을 연구하는 직원이 거의 없다는 탄식이었다. 걱정과 비판에 멈춰선 젊은이에게는 성장이 없다. 비판을 멈추라는 얘기가 아니다. 제삼자의 입장에서 걱정만 보태는 것이 아니라 대안을 제시하기 위해 노력하는 젊은이들에게 미래가 있다는 얘기다. ▼ 「난세」에 거는 기대감 ▼ 젊은이들이 더 열심히 일하고 더 단단한 실력을 갖춰나가기를 바라는 것은 우리 모두의 한결같은 소망이다. 세태가 어지러울수록 그 바람은 더욱 강렬해진다. 우리의 보다 나은 미래가 그들에게 달려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내 일터에서 자신만만한 눈빛으로 자신의 미래를 당당하게 개척해 나가는 우리 젊은이들을 더 많이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정희자 <대우개발 회장>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