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홍의 세상읽기]「당일치기」

  • 입력 1997년 4월 15일 09시 32분


나는 불행히도 일을 미리미리 해두는 좋은 습관을 기르지 못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학교 준비물은 등교시간에 임박해서 챙기고, 시험공부는 바로 전 날이 되어야 겨우 시작했다. 물론 방학 숙제는 개학하기 직전에 북새통을 떨었고, 이런 습관은 대학에 와서 절정기를 맞이했다. 의과대학은 강의 시간도 많거니와 시험이 워낙 자주 있었다. 말하자면 어릴 때부터의 습관과 환경이 조화를 이룬 셈이다. 그 때 우리들은 이런 것을 당일치기라고 불렀다. 그 당일에 급하게 해치운다는 뜻이었을 것이다. 이런 당일치기가 좋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나마라도 하면 성공이었다. 그것조차도 안되어 시험에 실패하는 동료들이 적지 않았으니까. 어떻든 초등학교부터 대학까지 거의 20년의 학교생활을 이런 식으로 보냈다.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이 습관은 고쳐지지 않았다. 오히려 완전히 몸에 배어 어쩌다 미리 하려고 해도 도무지 능률이 오르지 않는 것이었다. 그러니 항상 시간에 쫓기는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다. 다만 사람들이 대개는 나와 같은 방식으로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된 것이 내게 큰 위안이었다. 동료 교수들은 말할 것도 없고 학생들도 옛날의 나와 별로 다르지 않았다. 시험은 당일치기가 표준이고, 보고서는 마지막 날 6시가 되어야 제출되었다. 심지어 석사나 박사 학위를 받기 위해 제출하는 논문도 그랬다. 얼마 전 학위 논문 심사에서는 이런 일도 있었다. 심사는 학생을 앞에 두고 5명의 심사위원이 면접을 겸한 질문을 하는 식으로 진행되었다. 심사위원들도 모두 그 전날 혹은 당일 아침에야 그 논문을 읽은 것이 분명한데 학생이 조금 더 심했다. 논문은 한 눈에 보아도 마감에 쫓겨 급하게 작성된 것이었고 그나마 머리 속에 정리되지도 못했다. 『여기에서 이야기하는 이 말이 무슨 뜻이지』 『…』 『이 말은 앞에서 한 말과 반대되는 말 같은데 왜 그렇지』 『…』 급하게 정리하느라 앞뒤가 헝클어진 논문을 두고 학생은 할말이 없는 것 같았다.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할 것 아닌가』 『저, 지금은 잘 생각이 나지 않는데요』 『이것 자네가 쓴 것 맞아』 『예』 『그럼 이 표의 결과는 어떻게 나온 것이지』 『잘 모르겠습니다』 한번 당황하니 모든 게 뒤엉켜 생각이 나지 않는 것 같았다. 마침내 심사위원 중 한 명이 화를 냈다. 『자네 도대체 이 논문에서 주장하는 것이 뭔가』 이제 학생은 반쯤은 포기한 상태가 되어 엉뚱한 말을 해버린다. 『예. 학위를 달라는 것입니다』 그래, 명답이다. 결국 그 불행한 학생은 그 다음 학기에 가서야 주장한 대로 학위를 받을 수 있었다. 만일 심사위원들이 당일치기에 실패했더라면 그 학생의 논문은 통과되었을 지도 모른다. 요즘 한창인 청문회에서 질문을 하는 사람들, 당일치기라도 열심히 하는지 모르겠다. 황인홍〈한림대교수·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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