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미부도 원인]「무리한 증설」 몰락 부채질

입력 1997-03-19 19:54수정 2009-09-27 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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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승호기자] 삼미그룹은 한때 「세계최고의 특수강 업체」를 꿈꾸던 총자산기준 25위의 특수강 전문기업. 54년 창업주 金斗植(김두식)씨가 서울 청량리에 목재가공업체인 대일기업을 설립해 출범했고 60년 삼미사로 상호변경, 원목 돼지 박하 수산물을 수출입하는 무역회사로 탈바꿈했다. 75년 창원기계공단에 당시 불모지나 다름없던 특수강 공장을 건설, 방산업체로 지정되면서 고속성장했다. 삼미는 60년대 서울 관철동에 31층짜리 삼일빌딩을 지었고 조선 금속 전산 유통업과 프로야구에까지 손을 댔다. 80년 김회장 별세후 경영에 어려움을 겪었으나 유나백화점(삼미유통의 전신)을 인수하고 공업용 다이아몬드를 생산하는 삼미화인세라믹스, 특수반도체 제조업체인 삼미기술산업을 설립하는 등 「몸불리기」를 감행했다. 특히 89년에는 3억달러를 들여 북미의 특수강공장 4개를 인수했다. 설비개수에만 3천억원을 투자, 특수강 생산능력을 1백만t규모로 늘리면서 재계를 깜짝 놀라게 했지만 재무상태엔 깊은 멍이 들었다. 빚은 늘고 은행도 차차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작년말기준 차입금 6천23억원(지급보증제외)의 63%를 제2금융권에 의존했다. 이 때문에 평균조달금리가 연 17%에 이른다. 작년말 그룹의 총부채가 2조5천9백억원으로 자산(2조5천3백억원)을 초과했다. 이달초 창원공장의 일부를 7천1백94억원에 포철에 팔았지만 삼미로선 돈을 만져보지 못했다. 포철이 공장을 담보잡고 있는 산업은행 등에 매입대금을 지불, 저당권을 해지하고 소유권등기를 하는 수순을 밟았기 때문에 운용자금에 목말라있는 삼미엔 도움이 되지못했다. 마지막 회생의 희망을 북미공장 매각에 걸었지만 포철이 인수를 거절, 삼미호(號)는 결국 침몰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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