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화제]전각예술가 최규일씨

  • 입력 1997년 3월 15일 08시 08분


[신복예 기자] 전각가 최규일씨(58)를 만나보면 이제는 찾아보기 힘든 기인(奇人), 옛 시절의 장인(匠人)을 떠올리게 된다. 시간이 아까워 깎지 않은 머리와 수염이 어깨와 목을 덮고 목욕은 1년에 한두번이면 족하다. 1년에 3백여일은 오전 3시부터 밤 12시까지 꼼짝 않고 옥돌에 글자나 문양을 새긴다. 화장실 가는 시간도 아끼느라 서울 정릉의 작업실 밖 하수구에 그냥 일을 보고 잠은 잠깐씩 누워 눈을 붙이면 그만이다. 돈이 필요하면 3,4일 짬을 내 절 10여군데를 돈다. 먹여주고 재워주고 돌아갈 때는 10만∼50만원을 차비라며 쥐어주기 때문. 30년 동안 새긴 돌만도 10만점이 넘는다. 1×1㎝에서부터 50×50㎝ 크기에 이르기까지 온갖 돌에 금강경 도덕경, 이백 두보 도연명 등의 중국시 그리고 고려와 조선의 한시를 새겼다. 한동안은 「여(旅)」자에 빠져 5백50개의 돌(9㎝×9㎝)에 각기 다른 조형으로 「旅」자만을 새겼다. 글자의 조형이나 돌의 크기, 각법에서 자유분방한 독자적 스타일을 구사, 기존 전각계에서는 그를 「이단자」로 취급하기도 하지만 그의 탄탄한 실력만은 인정한다. 경인미술관 독일문화원 공간 등의 초청으로 전시회를 가진 것이 13회에 이르고 88년에는 독일 공영TV에 그의 예술세계가 소개됐다. 『예술은 땀의 양, 노동에 비례한다고 생각합니다. 왜 양질 전환의 법칙도 있잖아요. 돈이요, 욕심 안부리면 다들 먹고 살 수는 있습니다. 돈 욕심부리면 예술 못해요』 그는 작품을 한점도 안팔고 창고에 쌓아 뒀다. 돌값만 해도 수억원이 넘지만 아무리 궁해도 팔 생각은 안했다. 언젠가 기념관을 하나 만들 생각이다. 그의 전직은 마부. 건축자재상을 하던 집안을 도와 15년간 말로 건축자재를 운반했다. 그러다 집안사업이 망하자 어려서부터 좋아하던 돌 만지는 일을 시작했던 것. 85년 첫 초대전으로 갑자기 유명해진 그는 술사준다는 사람들을 쫓아다니며 1년의 세월을 그냥 보냈다. 그러던 어느날 그는 이래서는 안되겠다고 결심, 5년 동안 외부와 연락을 완전히 끊고 지방에 은둔해 돌파기에 다시 몰두해 오늘의 작품세계를 이뤘다. 사물놀이패의 김덕수, 공연기획자 강준혁, 시인 신경림씨 등이 그의 후원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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