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황장엽 망명의 世論

  • 입력 1997년 2월 24일 20시 22분


북한 노동당 비서로 체제유지의 핵심이었던 黃長燁(황장엽)이 탈북(脫北)한 것을 두고 말들이 많다. 대북한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들은 엄청난 일이라고 역설한다. 일반관료들과 언론은 그럴 만하다고 동의한다. 그러나 야당과 비판여론층은 그것의 공개시점을 보건대 공작의 냄새가 짙다고 공격하고 나섰다. 한보사건으로 궁지에 몰린 청와대가 국면전환 목적으로 이용했다는 비난이다. 왜 하필 「한보의혹」을 받아온 金泳三(김영삼)대통령의 차남 賢哲(현철)씨에 대한 수사요구가 떠올랐을 때 그런 것이 터져나와 국민의 눈을 돌려놓느냐는 것이다. 망명신청자의 신변이 중국주재 한국대사관에 있는데도 주재국 정부와 사전협의 한번 하지않은 단계에서 이를 공개한 것은 외교안보의 기본상식을 위배한 조치였다는 지적이다. 이는 맞는 비판이다. 그러나 정부측은 북한이 황비서를 탈취해낼 위험성이 커 조기공개가 불가피했다고 주장한다. ▼잇단 「北風」에 우려▼ 황비서는 남한의 요로 곳곳에 북한첩자 상당수가 박혀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앞서 그는 일부언론이 공개한 자필서신에서 한국은 안기부와 군 그리고 여당을 강화해야 한다고 훈수했다. 북한간첩 부분은 정보사항이므로 일반인이 시비를 가리기 어렵다. 그러나 이 훈수대목에 이르러서는 얼핏 웃음도 나오고 할 말이 많아짐을 느낀다. 기자도 또 하나의 북풍(北風)이 아니냐며 우려하는 한 대학교수에게 『그가 북한체제의 핵심이었으니 북한식으로 하라고 충고하는 모양』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이어 15년여전에 귀순한 李韓永(이한영)씨가 권총피격당한 사건은 다시 북풍의 우려를 보탰다. 수사당국은 황비서의 망명을 위협하려는 북한간첩의 소행이라고 일찌감치 결론지었다. 후에 한 경찰간부는 원한관계에 의한 범행일지도 모른다고 언급했다. 이 경찰간부는 며칠후 보직해임됐다. 또 목격자는 처음 이씨가 손가락으로 「두명의 간첩」이라는 표시를 했다고 진술했으나 나중에 번복했다. 한편 중국정부는 한국외무부의 협상단이 북경에 도착하자 『협상개시도 하기 전에 언론 플레이부터 하고 오느냐』며 냉랭하게 대했다는 소식이다. 미국의 뉴욕타임스 등 해외 유력지들도 『한국이 조용하게 처리할 수 있는 이 망명사건을 떠들썩하게 만든 것은 국내정치에 이용하기 위해서』라고 꼬집었다. 중국측은 황비서가 한국에서 일정 기간 언론회견을 하지 않도록 한다는 것 등을 고위층 친서로 보장하라고 요구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국내정치용으로 써먹지 말라는 뜻이다. ▼대통령 담화에 대목▼ 일반국민은 처음엔 북한의 굉장한 고위직 인물이 우리에게 온다는 소식에 감명받을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한보사태의 부패비리 덩어리가 수술되며 노동관계법과 안기부법 개정안이 국회를 날치기통과하는 「장난감 정치」가 개선될 수 있는가. 황비서의 탈북은 굉장한 일이지만 결국 우리 자신의 문제를 고쳐주는 치료제는 될 수 없다. 그것은 일시적으로 아픔을 잊게 하는 진통제일 뿐이다. 일반국민이 이런 인식에 도달하기가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다. 정부여당과 청와대 당국은 이 국민의 인식을 직시해야 한다. 황비서 같은 인물의 망명이 국민통합을 가져다주고 그 통합이 민족통일의 밑거름이 되기는커녕 민심이 인공(人工)의 둑을 넘어 사방으로 흩어지는 형국이다. 오늘 김대통령의 대국민 담화가 민심의 정곡을 찌르는지 여부에 국민통합이 달려 있다. 김재홍 <국제부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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