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홍의 세상읽기]기차길 옆 오막살이…

  • 입력 1997년 2월 17일 20시 15분


모처럼 한가한 휴일이었다. 그냥 방에 있기가 아까워 산책이라도 하려고 작은아이를 데리고 나섰다. 아내도 즐거운 마음으로 따라나서는데 어느새 불쑥 커버린 큰 아이는 같이 나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이제 다 컸다고 그러는지 영 무뚝뚝하다. 재롱부리던 시절이 좋았는데 하고 생각 해보니 벌써 품안의 자식이 아닌 것 같다. 그래,역시 여자아이가 있어야해. 조금 늦은 편이었지만 둘째 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딸이라는 것을 확인한 순간부터 마음이 부풀었다. 예쁘고 차분하고 다정한 아이. 이런 아이를 키우자면 얼마나 즐거울까. 물론 마음뿐이고 바쁜 직장 생활 속에서 아이를 키우는 일은 모조리 아내 차지가 되어 버렸다. 어쩌다 깨어 있는 모습을 가끔 볼 수 있을 뿐이었다. 『여자들은 복도 많지』 자고 있는 아이를 보면서 가끔씩 아내에게 이렇게 푸념을 하면 아내는 『글쎄, 한 번 키워봐』하면서 말꼬리를 흐렸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잠자는 천사가 울부짖는 악마로 변하는 일은 너무 흔히 있는 일이었다. 울음소리는 왜 그렇게 큰지. 도무지 여자아이 같지가 않았다. 아내나 나나 목소리가 작은 편인데. 결국 목소리에 관해서는 돌연변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걷다가 아이의 불안정한 뜀박질에 맞추어 뛰었더니 옷에 땀이 밴다. 전철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지나간다. 『아빠, 기차 노래 해줘』 『뭐』 어떤 노래를 말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아내를 쳐다보자 웃으며 대답한다. 『동요 있지? 기찻길 옆 오막살이…하는 노래』 역시 아이를 키우는 엄마는 모든 것을 안다. 『그 노래를 몇 번 해주었더니 전철만 지나가면 불러달라고 그러네』 그 정도 노래라면 아빠도 얼마든지 할 수 있지. 아이를 안고 노래를 부르자 아이도 따라 한다. 『기찻길 옆 오막살이 아기아기 잘도 잔다…』 그러고 보니 얘가 바로 기찻길 옆에서 태어나고 자란 아이였다. 기찻길 옆에 있는 동네에는 아이들이 많다는 말이 있었다. 기차가 밤낮을 가리지 않고 다니다보니 사람들이 한밤중에 잠을 자주 깨기 때문이라고들 했다. 그래서 인지는 몰라도 정말 기찻길 주위에는 아이들이 많았고, 그 아이들은 목소리가 유난히 컸던 것 같다. 우리 아이도 기찻길 옆에 살다 보니 목소리가 커진 것은 아닐까. 싱거운 생각인줄 알면서도 조금은 걱정이 된다. 요즘 지하철 주위가 인기 있는 주택가라는데…. 기찻길 옆 아이들이 더 많아질 것이다. 그렇지않아도 시끄러운 세상이 이 아이들이 자라 더 시끄러워지면 어떻게 하지? 황인홍〈한림대교수·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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