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생각 저생각]美 대통령 취임식

  • 입력 1997년 2월 14일 20시 10분


지난달 미국에 들렀더니 마침 클린턴대통령의 취임 축하행사 준비가 한창이었다. 토요일밤 엄청난 규모의 불꽃놀이를 시작으로 연예인들이 참여하는 다채로운 쇼가 일요일까지 공연되고 월요일 아침의 취임식과 오후 내내 계속되는 퍼레이드가 끝나면 그날 저녁에는 화려한 무도회가 여러곳에서 펼쳐지는 것으로 짜여져 있었다. 3일동안의 축하 행사에 드는 비용은 4천2백만달러라 하니 우리 돈으로는 약 3백50억원쯤 되는 큰 돈이다. 약 2주간 미국에 머무는 동안 클린턴의 취임행사에 관심을 갖는 인사는 만나보지 못했다. 더구나 이번과 같이 두번째 취임 축하 행사는 새로운 감흥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더욱 그런 것 같았다. 그래서 화려한 행사를 좋아했던 레이건도 재선되었을 때 그의 보좌관에게 축하행사를 꼭 전과 같이 해야 하느냐고 투덜거렸다고 한다. 레이건과 바로 그 이야기를 나누었던 보좌관이 텔레비전 토론 프로그램에서 한 말이 인상적이었다. 『대통령의 취임 축하행사는 대통령이 하기 싫어하더라도 화려하게 치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대통령선거 때 도움을 준 정당인과 수 많은 자원봉사자들에게 잊을 수 없는 추억거리를 만들어 주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대통령도 사정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기 싫어도 해야 할 일이 있고 자신을 지지해준 사람들을 소홀히 대할 수도 없을테니 말이다. 주위에는 수십년을 같이 해온 가신들이 있고 또한 지연 학연 혈연 때문에 열성적으로 지지해준 믿을만한 집단이 있다. 그래서 주요 부처의 개각이 있을 때마다 특정집단에 대한 배려가 공공연히 지적되고 한보비리와 같은 대형사건이 터지면 가신들의 영향력이 점쳐지곤 한다. 취임 축하행사 비용으로 4천2백만달러를 쓰는 것은 낭비처럼 보인다. 그러나 만일 대통령의 측근과 지지자들이 취임 때의 멋진 무도회의 추억으로 만족하고 다른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면 그만한 돈을 쓰는 것도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 겉으로 드러내 놓고 화려한 파티를 갖는 것이 속으로 은밀하게 부정한 짓을 하는 것보다 나을테니 말이다. 최협<전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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