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鄭星姬 기자] 지난 며칠간 미국과 프랑스 대부분 여성들의 대화 주제는 단연 지난 3일 뇌출혈로 타계한 프랑스 주재 미국대사 파멜라 해리먼(76)의 극적인 삶이었다.
미국의 언론들은 빌 클린턴 대통령이 『그녀는 내가 만난 사람들중 가장 비범하고 재능이 있는 인물이었다』고 애도할 정도로 각별한 찬사를 보낸 파멜라의 재능 중에는 돈 많은 남자를 유혹하는 재능이 첫손에 꼽힌다고 연일 특집기사를 내보내고 있다.
「파멜라 디그비 처칠 헤이워드 해리먼」이라는 긴 이름에서 보듯 파멜라는 세번의 결혼으로 엄청난 명성과 부를 쌓은 뒤 말년에 정계에 혜성처럼 등장했으며 수많은 연인들과의 로맨스로 점철된 영화의 주인공같은 삶을 살았다.
1920년 영국 시골 귀족의 딸로 태어나 19세에 윈스턴 처칠의 아들 랜돌프와 결혼함으로써 다우닝가 10번지 총리관저에서 저명인사들과 교분을 시작한 그녀는 5년뒤 남편과 파경을 맞은 뒤에도 시아버지의 후광을 업고 사교계를 누비기 시작한다.
파멜라는 당시 주영 미국대사인 백만장자 애버럴 해리먼과 CBS라디오 런던특파원인 에드워드 머로와 삼각관계에 들어갔으며 유부남이었던 이들이 이혼을 거부하자 이들을 떠나 세계적인 플레이보이인 알리 칸 왕자를 새 연인으로 맞았다.
칸왕자가 할리우드의 여배우 리타 헤이워드에 빠져 자신을 떠나자 이탈리아 피아트사의 상속자인 지아니 아그넬리의 연인이 되었으며 5년후 아그넬리와 헤어진 후에는 프랑스의 은행가 엘리 드 로실드의 정부가 된다.
71년 당시 51세였던 그녀는 옛애인이었던 해리먼과 재회, 결혼함으로써 미국시민이 되고 미 정계 진출을 위한 발판을 마련한다.
이같은 그녀의 삶에 대해 첫남편과의 사이에 낳은 아들인 영국의 하원의원인 윈스턴 처칠도 『어머니는 남자 없이는 진정 행복하지 못했다』고 회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