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窓]위안부출신 화가 姜德景할머니 日대사관앞 노제

  • 입력 1997년 2월 4일 20시 34분


[홍성철기자]「할머니 이젠 평안하소서…」. 4일 오전 11시반경 서울 종로구 중학동 일본대사관 앞. 지난 2일 68세로 사망한 일본군 위안부출신 화가 姜德景(강덕경)할머니를 기리는 노제(路祭)가 위안부출신 할머니 20여명과 한국정신대대책협의회(정대협) 등 관련단체 회원 1백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지난 44년 15세라는 미처 피지도 못한 나이에 일제에 의해 위안부로 끌려갔던 강할머니는 지난 94년부터 자신이 몸소 겪은 일제의 만행을 그림으로 폭로해 온 「위안부화가」. 일본대사관 정문 앞에 밤 대추 등으로 간단한 제상을 차린 참석자들은 강할머니의 영전에 분향을 한 뒤 윤순녀 정대협대외협력위원장의 추도사로 노제를 시작했다. 윤씨는 추도사에서 『일본정부는 정신대할머니들을 「공창」(公娼)으로 부르는 등 갈갈이 찢기고 시궁창속에 버려진 강할머니에게 다시 한번 비수를 꽂았다』며 일본정부를 비난했다. 강할머니와 같은 위안부출신의 이용수할머니(69)는 『강할머니는 일제에 짓밟히기 전인 15세의 꽃같은 모습으로 하늘나라로 갔을 것』이라며 고인의 넋을 기렸다. 위안부할머니들의 거주지인 「나눔의 집」에서 강할머니와 함께 그림을 그리며 생활했던 金順德(김순덕·77)할머니는 『강할머니가 「병이 나으면 일본으로 건너가 끝까지 함께 싸우자」고 입버릇처럼 말했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이어 한두레 풍물패의 추도공연과 김경란정대협실행위원의 살풀이 공연이 이어지면서 추모분위기가 절정을 이뤘다. 한복차림의 김씨가 일본군 복장을 한 남자 2명에게 핍박받는 강할머니의 모습을 재연하자 애써 눈물을 참고 있던 할머니들은 옛날의 악몽이 되살아난 듯 끝내 오열하기 시작했다. 『이 나쁜놈들아. 한번 나와보기라도 해야 할 것 아니냐』 할머니들의 절규가 들리지 않는 듯 이날 굳게 닫힌 일본대사관 정문은 끝내 열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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