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홍의 세상읽기]폐차장 가는 길

  • 입력 1997년 1월 27일 20시 34분


서로 말이 없었다. 나는 그냥 운전만 하고 아내도 입을 다문 채 차창 밖만을 바라보았다. 집을 나설 때부터 이런 분위기였다. 그렇게 몇 분이 지나갔다. 『왜 눈물이 나려고 하지』 침묵을 깨며 아내가 겨우 한 마디를 건넸다. 『그래, 마음이 편하지가 않네』 별 의미도 없지만 이런 말이라도 하지 않으면 정말 눈물이 날지도 몰랐다. 폐차를 하러 가는 길이었다. 『내 차 가져다 타』 며칠 전 전화로 이런 말을 해온 것은 자그마한 사업을 하는 친구였다. 『갑자기 무슨 소리야』 대답을 하며 생각해 보니 차를 바꿔야겠다는 말을 들은 것 같기도 했다. 『얼마 받을 건데』 『그냥 타고다니다가 나중에 다시 돌려줘』 고마운 말이다. 만날 때마다 10년째 같은 차를 타고다니는 나를 안쓰럽게 생각하던 친구다. 『너를 위해서가 아니고 네 차가 불쌍해서 그래. 주인 잘못 만나 쉬지도 못하고 아직도 고생이니…』 어떻든 이렇게 이야기가 되어 차를 얻었다. 이제 타던 차를 처분할 차례다. 20만㎞가 넘게 타다 보니 주행하는 부분을 제외하고는 정상인 곳이 없었다. 그러니 누구에게 줄 수도 없고 팔기도 그렇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지난 10년간 나와 우리 가족을 위해 봉사한 이 차가 다른 사람한테 가서 행여 푸대접을 받는 것이 싫었다. 결국 폐차하기로 결정하였다. 주위에서 모두들 차를 사기에 덩달아 36개월 할부로 구입한 차였다. 9개월이 지날 때 『이제 바퀴 네개 중 하나는 진짜 우리 것』이라며 같이 즐거워했고 2년이 지날 때부터는 『할부만 다 끝나면 팔고 새 차를 산다』고 구박을 하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정이 들고 그렇게 10년을 끌어온 차였다. 막상 폐차를 결정하고도 쉽게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우리는 평소 잘 하지도 않던 세차를 하였고 내부도 깨끗이 닦았다. 그리고 폐차를 하러 가는 그 길에도 그 차를 이용하였다. 아주 망가지지 않은 다음에야 폐차장까지 차를 밀고 갈 수는 없으니 누구나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그 상황에 어떤 잔인함이 느껴졌다. 이제 편안히 쉬게 되는 거라고 작별인사를 하고 돌아오는 발걸음도 가볍지 않았다. 정말 내가 원망스럽지 않다면 그날 밤 꿈에서라도 나타나련만 못내 아쉬웠음인지 찾아오지 않았다. 어쩌면 희미해진 그 전조등으로 밤길을 나서는 것은 꿈길이라도 어려웠을지 모른다. 황 인 홍<한림대교수·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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