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심칼럼]날치기로 잃은 것

  • 입력 1997년 1월 24일 20시 29분


작년 연말 노동관계법 등의 국회날치기가 가져온 손실은 너무 컸다. 파업으로 인한 2조7천억원의 생산차질은 말할 것도 없고 대통령과 정부에 대한 신뢰의 추락, 가뜩이나 불황에 허덕이는 경제의 마비, 걷잡을 수 없는 사회적 혼란과 불안, 국제사회에서의 국가이미지 손상 등이 눈에 보이는 손실이라면 눈에 보이지 않는 그보다 더 값비싼 손실도 있었다. 바로 21세기로 가는 국가전략과 관련된 것이었다. ▼국가적 과제 신뢰 추락▼ 지난 1월18일자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지는 한국의 최근 노동법사태에서 세계화에 관한 의미심장한 교훈을 읽고 있다. 세계화시대의 개방경제와 노동시장 유연성은 자본과 노동을 사양산업에서 성장산업으로 신속히 전환시켜 새로운 고용을 창출하고 기술과 시장의 신호를 읽게 하는 불가피한 변화인데도 이를 설득과 동의 없이 권위주의적으로 입법화함으로써 오해와 반발을 야기했다는 분석이었다. 정부가 작년 5월 노사관계개혁위원회를 출범시키면서 제기한 과제가 21세기 세계화 정보화시대에 대비한 국가경쟁력 제고였다. 이를 위해 노동관계 법과 제도를 국제기준에 맞춰 개정하고 해고기준의 완화와 노동시간의 탄력적 운용을 통해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확대한다는 계획이었다. 즉 경제환경 변화에 따른 산업구조 조정을 위해서도 노사관계의 틀을 개혁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문제는 누가 이 세계화의 고통을 짊어지는 희생자가 되느냐는 것이었다. 국가경쟁력과 생산의 효율성을 제고하면서 동시에 노동시장의 재편성에서 소외되거나 탈락하는 주변부 노동자들의 복지와 분배의 형평을 보장하지 않는 한 노동자들의 「오해」를 해소하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노동자들이 한편으로 노동관계 법 제도 관행의 개혁을 수용할 채비를 갖추면서도 불만과 두려움을 숨기지 않았던 것은 그 때문이었다. 노사관계개혁위원회가 공개적이고 민주적인 토론과 합의를 통해 노동개혁을 추진하기로 한 것은 그 점에서 현명했다. 이 열린 공간에서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당사자들이 많은 쟁점에 합의하고 미합의 쟁점을 정부의 조정에 넘겼다. 그렇게 마련한 정부안에서 정리해고 등에 사용자측 의견이 더 가미되긴 했지만 노동계는 상급단체 복수노조 인정이라는 보상을 얻었다. 노동계에 불리한 조항은 국회 입법과정에서 개선할 기회도 있었다. 이 어려운 선택을 일거에 날려버린 것이 국회 날치기였다. 노동자들에게 남겨진 것은 참기 어려운 배신감과 고용불안이었다. 민주주의의 후퇴만이 아니었다. 이해당사자들의 참여와 합의를 통해 당사자 모두를 승자로 만들 협상개혁 실험을 무위로 돌리고 그 결과 21세기를 향한 중대한 국가적 과제를 대립과 갈등의 늪으로 빠뜨렸다. 이 손실을 누가 보상할 것인가. 그것이 정말 「정치논리」의 결과라면 그런 정치와 정부는 없는 것만 못하지 않은가. ▼반성없는 정치권 답답▼ 클린턴미국대통령이 집권2기 취임사에서 강조했듯 세계화시대의 정부는 국가가 문제를 풀어나가는 주체가 아니라 국민 스스로 문제를 풀도록 사회적 잠재력을 결집시켜 공동선(共同善)을 찾도록 유도하는 역할에 만족해야 한다고 한다. 이 「작은 정부」에 필요한 것이 있다면 겸손과 포용과 세계를 새롭게 해석하는 통찰력일 것이다. 만약 야당까지를 포함한 정치권 일각에 날치기로 잃어버린 것에 대한 이러한 진지한 반성이라도 있다면 이 반성을 통해 우리 정치가 미래의 국가경영을 위한 정치로 거듭나기를 바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여야 영수회담 이후에도 우리 정치는 그 희망이 덧없고 철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있어서 답답하고 우울하다. 김 종 심<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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