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섣달 그믐날의 상소

  • 입력 1996년 12월 30일 20시 20분


오늘의 대통령 「金泳三(김영삼)총재」와 난생 처음 마주친 것은 광화문 지하도에서였습니다. 그러니까 70년대 유신말기, 대통령이 자주 써온 표현처럼 정치적으로 「깜깜하던 시절」의 어느날이었습니다. 가을비가 스산하게 내리던 그날, 나는 코트 차림으로 당보를 뿌리며 가투(街鬪)에 나선 장면을 목격했던 것입니다. 외롭고 쓸쓸하고 딱해 보이는 투쟁. 제갈길 바쁜 시민들에게 매달리는 야당지도자를 지켜보던 그 느낌은 선연합니다. 지금 그 추상(追想)은 공교롭게도 金鍾泌(김종필)씨 때문에 하게 됩니다. 그때 그시절 국무총리로 혹은 의원으로 유신본당에 속했던 JP가, 오늘날 「무도한 권력」을 향해 통분해하고 벼르는 데서 지하도의 총재를 떠올리고 있습니다. ▼ 씨름판같은 정치문화 ▼ 야당총재 JP가 「스스로 무덤을 파는 정권」을 비난하고 투쟁을 선언합니다. 자민련 의원들은 여당으로 가버린 배신자의 형상들을 세워놓고 화형식을 합니다. 그리고 YS가 뿌리뽑겠다고 다짐하던 「공작정치」가 부메랑처럼 야당을 되찌른다고 난리입니다. 역사의 아이러니라고 치부하기엔 너무 뒷맛이 찜찜합니다. 문득 인간사에 대한 서글픔같은 것이 이는 것을 어쩔 수 없습니다. 도무지 이 나라 정치의 20년은 꼬박 그런 기막힌 콘트라스트밖에 보여주지 못하는 것인가요? 무대를 여야(與野)로 바꾸어 서서, 대사(臺辭)를 바꾸어 읽는 고작 그런 것이 정치란 말인가요? 대통령은 지방자치 얘기가 나오면 50년대의 경남지사 아무개를 예로 말하곤 했습니다. 「김영삼의원」이 공천 거들고 돈 주고 조직 대서 당선시킨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처음엔 서울에 오면 꼭 찾아와 『시키는 그대로 하겠습니다』고 맹세했더라지요. 그러더니 몇달에 한번꼴로 들르고 반년쯤 지나니 아예 찾아도 나타나지 않더라고요. 알고 보니 경무대는 무시로 드나들더라고 하셨습니다. 강원도 지사의 이번 자민련 탈당을 보면서 대통령으로부터 경험담을 들었던 사람들의 소회를 상상해 봅니다. 우선 수십년 정치 동지, JP와도지사를 등돌리게 한 인간성의 측면을 생각합니다. 그리고 40여년전 자유당정치와21세기를 내다보는 90년대말 신한국당 정치의 차이를 비교하며 역사의 진보와 정체를 생각합니다. 섣달 그믐밤, 아랫목에 발 담그고 내일 내년의 희망이나 그리는 우리 「낮은데 사람」들은 정치가 뭔지, 권력이란 왜 그토록 잔혹하고 우악스럽고 드잡이질만 하는 것인지 알 길이 없습니다. 「군정」도 「문민」도 밀어붙이고 쓰러뜨리는 씨름판만 벌이는지 알 수 없습니다. 朴正熙(박정희)시대를 그리워하는 이도 있다지만 아직은 고개를 흔드는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의 공로와 눈부신 치적에도 불구하고 비도(非道)하고 불법적인 정치공작이라든지, 정치적 목적에 의한 인명 인권 손상, 부도덕성 같은 것들이 용훼(容喙)의 여지를 없애는 것은 아닐까요. ▼ 「칼자루」쥔 쪽이 책임을 ▼ 정치에 대한 무한(無限) 기대는 이제 거품처럼 스러지고 있습니다. 「민주화만 되면」이라는 만병통치약 선전같은 것을 믿었다가 후회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마디 호소합니다. 정치란 아이들 도덕 교육에도 영향을 미치고, 우리 삶에서 외면하려야 할 수 없는 공기같은 것이기에 호소합니다. 막된 씨름판같은 정치, 당당하지 못한 정치, 수십년전에 신물난 정치의 복사판이 21세기 코밑에서도 되풀이 되지 않게 해주시기를. 나쁜 정치의 책임은 역시 힘과 칼자루를 쥔 쪽이 더 져야 하기에 양비론으로 말하지 않겠습니다. 金 忠 植(정보과학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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