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약값행정 문제 있다

  • 입력 1996년 12월 22일 20시 20분


「시민을 위한 약사모임」의 공개탄원서를 계기로 약값파괴 논란이 일게 된 경위부터가 역설적이다. 약사들은 약을 비싸게 팔수록 유리하다. 그러나 시민을 위한 약사모임은 약을 싸게 파는 것도 죄가 되는지를 물으며 약값자율화와 약사법 시행규칙개정을 탄원하고 있다. 표준소매가격을 지나치게 높게 정해 놓고 그보다 싸게 팔 경우 영업정지 처분을 내리는 보건복지부의 약값행정에 문제 있다는 지적인 것이다. 이에 대해 보건복지부와 대한약사회는 즉각적으로 반박하고 나섰다. 복지부는 약값을 완전자율에 맡길 경우 덤핑경쟁이 심해지고 약을 남용하는 부작용이 일어날 우려마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대한약사회는 복지부 고시가격이 비싸므로 약값을 자율화해야 한다는 약사모임의 요구는 현찰거래로 약품을 싼 값에 공급받아 박리다매(薄利多賣)하는 대형약국들이 자신들의 덤핑판매를 합법적으로 보장받기 위한 주장에 불과하다고 반박하고 있다. 제약회사간 또는 약국간에 덤핑경쟁이 심해지면 영세한 제약회사와 돈이 넉넉지 못한 동네약국의 경영이 어렵게 된다. 그로 인해 생길 수 있는 사회문제가 결코 가볍지 않다. 그때문에 덤핑은 막아야겠다는 복지부의 행정방침이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시민을 위한 약사모임의 주장대로 한 병에 1백10원 내지 비싸야 1백40원이면 구입할 수 있는 쌍화탕류의 표준소매가격이 3백85원이나 된다는 대목에 이르면 복지부의 약값행정이 시민을 위한 것인지, 약사를 위한 것인지 반문하며 약값 자율화를 건의하는 약사모임의 주장에 시민들의 귀가 솔깃해지는 것은 당연하다. 모든 상품과 용역의 가격은 시장기능에 맡기는 것이 자유경제체제의 원칙이다. 따라서 정부의 개입을 인정하는 경우라도 그 개입은 어디까지나 소비자보호와 공정거래질서를 위한 것이어야 한다. 독과점에 의한 시장지배와 폭리를 미리 막고 규제하는데 목적을 두되 동시에 소비자에게 이익이 돌아가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복지부의 약값행정은 표준소매가격을 고시가격으로 묶되 하한가(下限價)유지에 역점을 둠으로써 폭리방지나 소비자보호 측면을 소홀하게 다루고 있다. 덤핑방지와 영세사업자 보호에만 치우친 결과다. 그런 면에서 소비자보호를 앞세운 약사모임의 주장을 일리 있는 문제제기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민간기구인 한국제약협회산하 의약품가격심의위원회가 결정하는 공장도가격이 공정하고 합당한가부터 이 기회에 가릴 필요가 있다. 그리고 하한가와 함께 상한가를 분명하게 정해 가격의 폭을 줄이고 어기는 경우 처벌하도록 규정을 보완하는 문제도 검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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