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242)

  • 입력 1996년 12월 13일 19시 36분


추락하는 것은 평화롭다 〈16〉 윤선은 불안해 보였다. 신차장 일을 윤선 남편이 알지 못하고 무사히 넘어간 것은 다행이었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윤선은 파탄에 대한 두려움을 실감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여자는 추억으로 사는 거야, 하는 윤선의 그 말은 한 사람에 대한 추억을 뜻하는 것이 아니었다. 추억이라는 이름의 연애감정을 뜻했다. 또 다른 신차장이 나타날 때마다 윤선의 갈등은 점점 짧아질 테고 어쩌면 동시에 아내와 애인이란 두가지 역할을 하는 요령을 익혀버릴지도 모른다. 아무리 입버릇처럼 이혼을 들먹여도 남편쪽에서 원하지 않는 한 윤선이 결코 이혼을 하지 않으리라는 것 역시 뻔한 일이었다. 어쨌든 이혼은 윤선의 푸념에나 등장하는 말이었다. 경애가 이혼한다는 말은 뜻밖이었다. 경애의 표정에는 회한도 별로 없었다. 이혼을 하는 이유도 분명하지 않았다. 『귀찮아서 그러는 것뿐이야. 그래봤자 남인데 죽는 날까지 아웅다웅하면서 함께 살 필요 뭐 있겠어. 한번 남이라는 느낌이 들기 시작하니까 얼굴 마주치는 것도 고역이야』 그 말 속에는 언제나 진지하고 건강한 경애답지 않게 짙은 환멸이 배어 있었다. 윤선과 나와 경애는 동갑이다. 우리의 젊음은 모두 팔십년대를 통과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연대에 젊은이의 책무를 다한 것은 경애뿐이었다. 남편이 이른바 운동이란 것에 계속 몸을 담고 있을 때 경애는 어렵게 살림을 꾸리면서도 흔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남편이 기업 홍보실에 들어간 후부터는 자신감을 잃은 약한 모습을 자주 보였다. 남편을 속물이라고 비난하는 말에도 점점 맥이 빠져갔으며 입버릇처럼 스스로를 「구닥다리 아줌마」라고 표현하곤 했다. 경애라는 향일성 나무를 흔든 것은 혹독한 폭풍우가 아니었다. 폭풍우가 갠 하늘 여기저기에 자고 나면 하나씩 새로운 태양이 출현했다. 나무는 시선 둘 곳을 몰라하고 있었다. 내 눈앞에는 『나의 국제경쟁력은 쓰레기 봉투야』라고 자조하던 경애의 모습과 『나이 들수록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어. 하룻밤 자고 나면 굳게 믿던 것이 바뀌어 있어』라고 하던 경애의 혼란스러운 표정이 떠오른다. 그리고 『몰랐어? 신경애씨가 부동산인지 주식인지에 빠져서 큰 돈 날리고 집안이 발칵 뒤집어진거?』하던 종태의 말도. <글:은 희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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