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226)

  • 입력 1996년 11월 27일 20시 13분


나에 대한 타당한 오해들 〈33〉 집에 도착할 때까지 애리는 계속 프랑스 얘기다. 『에이즈 계몽단체에서 자원봉사하는 친구가 있었는데 수화를 배우고 있더라구. 농아들한테도 에이즈 예방교육을 해야 한다고 말야. 그런 게 바로 소수에 대한 관심이지 뭐야』 『내 친구 중에 한 달간 유럽여행을 하고 온 애가 있는데, 여행에서 막 돌아와서는 인생을 다시 보게 됐다고 설쳐대더니 딱 세 달 지나니까 그 전하고 똑같이 살더라. 넌 거기서 이 년이나 있었으니까 「프랑스에서는 말야」하는 말버릇이 석 달은 더 가겠지만』 『그런 건 아냐. 사실 난 프랑스 사람들 기질 싫어. 그 사람들 편견은 말도 못해. 너무 획일적인 사회에서 자라다보니 처음에는 말할 수 없이 열등감을 느꼈지만 말야』 우리나라 대학가에서 최근에 동성애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고 하자 애리는 이렇게 묻는다. 『그럼 언니는 진보적인 교수네? 언니가 웬일이야? 앞장선다든지 하는 식으로 남의 눈에 띄기 싫어할텐데?』 나는 또 시작이구나 싶으면서도 마음 한쪽이 약간 산란해진다. 애리의 말이 사실이다. 기미로 가득한 박지영의 지친 얼굴이 떠오른다. 박지영 때문에 어쩌다보니 얽히게 되었지만 앞장서는 일은 질색이다. 게다가 요즘 들어 박지영이 교수 임용에 대한 공고가 나거나 정책안이 발표될 때마다 신경을 곤두세우고 나에게 동병상련을 강요하는 것이 꽤 번거롭다. 그녀의 조바심 많고 잔망스러운 성격이 딱하다 못해 앙살로 여겨지기까지 한다. 아파트의 지하 주차장에 차를 세운다. 트렁크에서 쇼핑백들을 꺼내면서 나는 불현듯 피곤을 느낀다. 그러고 보면 내 삶은 남의 인생에 휘말리면서 흘러가고 있는 게 아닌가. 내 삶을 나라는 존재로 적극적으로 채우려고 하지 않았기에 언제나 남에게 빈틈을 보이고 오해받고, 해서 인생이 더 복잡해지는 게 아닌가. 모르겠다. 뜨거운 물에 샤워를 하고 깡통맥주를 세 개쯤 마신 다음 내 침대에서 혼자 잠들고 싶다. 단순하게 생각하고 단순하게 살고 싶다. 어린애처럼. 나는 어린시절을 거치지 않고 성장해버렸다. 그래서 어린 나를 복원시켜 거기에서부터 다시 성장하고 싶어 내 꿈은 이렇게 끊임없이 열두 살 부근을 맴도는 것일까. 주차장 안이 어둡다. <글 : 은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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