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216)

  • 입력 1996년 11월 17일 20시 17분


나에 대한 타당한 오해들〈23〉 애리는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또 나에 대한 논평을 늘어놓기 시작한다. 『언니가 먼저 누구한테 전화하는 것 한 번도 못 봤어』 『남을 찾을 일이 없으니까. 뭐든지 혼자 하는 게 편하고, 그게 이제 습관이 됐어. 남하고 얽히는 게 귀찮아』 『아냐. 언니가 남한테 귀찮은 존재가 될까봐 미리 피하는 거야』 『……』 『언니는 자신을 그대로 내보이지 않고 한 꺼풀 포장을 하는 것 같아. 멋있게 보이려고 위선을 부리는 것하고는 좀 다른데, 음 뭐랄까. 말하자면 자신이 보이고 싶어하는 모습으로 남이 봐주었으면 하는 거야. 보일 준비가 다 끝난 모습만 내보이려고 하고, 그러니까 늘 긴장하고 말야』 나는 어쩐지 말문이 막혀버린다. 나도 말로만 듣던 정곡이란 것을 갖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러기에 이 순간 「정곡을 찔린 듯하다」는 말이 떠오르는 게 아니겠는가. 내가 「보여지는 나」와 「바라보는 나」를 분리한 것은 어린 시절부터 지녀왔던 「작위」란 이름의 처세법이었다. 『너, 나를 그렇게 열심히 관찰하고 있었어?』 『응. 내 자랑이지만 난 통찰력이 좀 있는 편이거든』 애리의 목소리가 의기양양하다. 『언니가 이 선생님하고 결혼 안 한다면 순 소심해서 그런 거야』 『소심하다구?』 그러고 보니 애리는 현석과 비슷한 말을 하고 있다. 그렇다. 현석과 애리가 한꺼번에 돌아온 것은 우연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들이 합동작전을 펴서 토끼몰이하듯 나를 몰고 가는 곳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어떤 낯선 운명이. 『그래. 언니는 부닥쳐보지도 않고 먼저 안 될 때를 대비하는 것 같아. 사고방식이 부정적인 건 아니고, 그러니까 저, 사실은 비겁한 거야. 원하는 일일수록 애써 기대를 품지 않으려고 하고』 『그렇게 보였어?』 『좀 실망도 하고 상처도 받고, 그러면 어때? 자기 마음 속에 사랑을 얻는 일인데? 기대하고 실망하고, 그런 것이 삶 아냐?』 전화벨이 울려서 우리의 얘기는 끊어진다. 나는 다행스러운 마음으로 전화기를 든다. 변명 같은 이야기를 길게 끌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여보세요』 『나야』 반갑게도 종태의 목소리다. <글:은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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