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사라진 총독부 망령

  • 입력 1996년 11월 15일 20시 35분


드디어 옛 총독부건물이 깨끗이 철거됐다. 엊그제 이 건물 북벽(北壁)을 허무는 순간 경복궁 본전(本殿)인 근정전(勤政殿)이 시가지를 향해 활짝 그 위용을 드러냈다. 한마디로 가슴이 탁 트이고 70년간 우리 겨레의 오욕과 회한의 역사를 말끔히 씻어주는 감동을 안겨주었다. 말도 많았던 옛 총독부건물 철거였지만 결행해 놓고 보니 잘했다는 것이 대다수 국민의 심정일 것이다. 본란은 金泳三정부 출범이전부터 이 건물의 철거를 거듭 주장해왔지만 오늘의 시점에서 이를 철거한 당위성은 자명하다. 일제의 한반도 식민통치의 목표는 한민족의 말살에 있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한 일단계 정책이 한국민의 국가에 대한 상징이었던 왕성(王城)의 파괴였다. 서울의 성곽을 헐어내고 왕궁도 파괴하여 한국민의 자주독립에 대한 싹부터 말살하려는 의도였으니 이같은 치욕의 역사를 청산하는 상징으로 옛 총독부건물의 철거는 당연한 일이다. 그동안 이 건물의 철거를 놓고 즉시철거론과 함께 보존론 유보론이 엇갈려 제기돼왔던 것도 사실이다. 보존론은 이 건물의 경제적 가치와 함께 역사현장의 보존으로 후세를 감계(鑑戒)하자는 국민교육차원의 두가지 이유에서, 유보론은 용산의 새 박물관이 완성된 뒤 철거하는 것이 옳으며 임시박물관으로 전시유물을 옮겼다가 또한번 옮겨야 하는 비효율을 제거하자는 이유에서 일견 타당성이 있었다. 그러나 일에는 매사 때가 있는 법이다. 옛 총독부건물의 철거논의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었다. 건국이래 이 건물의 철거는 독립국가의 존엄성과 정통성을 위해서도 반드시 단행돼야 한다는 주장이 계속 있어왔다. 이를 실행치 못한 것은 명분이 없어서가 아니라 이를 감당할 만한 경제적 힘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우리 힘으로 세계에 손색없는 버젓한 박물관 하나쯤은 세울 만한 여력이 생겼으니 더 이상 머뭇거리지 않았던 문민정부 초기의 결정은 시의적절한 것이었다. 돌이켜보면 당시 일제의 경복궁파괴 실상은 너무나 야만적이었다. 새로 지은지 50년 남짓한 7천칸, 3백50채의 새 왕궁을 전각 7개와 30채만 남기고 모조리 헐어버렸을 때 이를 바라보던 우리 한국인들의 비분과 좌절이 어떠했을까. 더구나 왕궁의 본전인 근정전에 바짝 잇대어 공룡(恐龍)같은 석조의 총독부청사가 막아섰으니 더 이상 망국의 한을 달래볼 대상조차 빼앗긴 격이 되고 말았다. 이번 옛 총독부청사 철거공사가 끝남에 따라 민족의 역사적 비원(悲願)의 극복을 위한 첫 걸음이 시작되었으니 더 이상의 과거지향적 찬반논의는 무의미하며 2003년 완공예정인 용산 새 박물관 신축에 국민적 지혜와 역량을 모을 때라 생각한다. 세계의 누가 봐도 손색없는 문화민족의 전통과 역사를 과시할 수 있는 위용과 내실을 갖춘 새 박물관 건설이야말로 오늘 우리 국민에게 부과된 역사적 사명이기도 하다. 이제는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일제잔재 청산에 나서야 할 때이며 옛 총독부건물의 철거야말로 그 첫 사업으로 적절한 대상인 것이다. 이같은 정부의 당당한 결단이 지난날 굴절된 역사를 바로잡고 21세기를 향한 새로운 선린과 동반자로서의 한일관계를 열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일제 식민지지배의 상징이었던 옛 총독부건물을 철거키로 한 김영삼대통령의 결단은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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