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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의 창/리비아]『집은 거주자의 것』

입력 1996-10-29 20:25업데이트 2009-09-27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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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비아에 와있는 우리 상사원들에게 올 여름은 유난히 길고 무더웠다. 리비아 정부가 부정부패 척결을 위해 지난 94년 제정했으나 그동안 유명무실해진 정화법을 시행한다고 군장교들을 대거 동원, 한바탕 소란이 일었기 때문이다. 리비아에서는 집이 소유자의 것이 아니라 거주자의 것이다. 따라서 집주인은 임대한 집에 대해 아무런 법적 권리를 행사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집을 임대하면 임대료의 50%를 세금으로 내도록 돼있다. 그러나 50%를 세금으로 내면 남는 게 없다는 이유로 대개의 집주인은 법을 지키지 않고 은밀히 임대거래를 한다. 그런데 이번에 정부가 집의 임대여부를 조사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놀란 집주인들은 행여 집을 빼앗길까 봐 셋집의 인터폰을 고의로 끊어버리는가 하면 문간방에 자신의 식솔을 끌고 들어와 함께 살겠다고 나선 것. 우리 외국인들도 덩달아 곤욕을 치렀고 심지어는 잠시만 집을 비워 달라는 요구에 교외의 외국인 캠프로 이주를 해야 했다. 리비아에서는 「집은 거주자의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불과 몇년전까지만 해도 적지 않은 외국인이 억울한 일을 당했다. 88년 주거지역 아파트에 있던 우리 무역관도 리비아인들에게 점거당한 일이 있다. 직원이 휴가차 며칠 무역관을 비운 사이에 리비아인들이 무역관을 차지했고 영문도 모르고 출근한 이집트 여비서가 빰까지 얻어 맞으며 쫓겨난 일이 있다. 우리 건설업체가 짓고 있던 공공 아파트단지는 준공일이 가까워오자 수많은 리비아인들이 문을 뜯고 한채씩 점령해버려 이들을 쫓아내기 위해 헬리콥터가 뜨고 경찰이 공포를 쏘아댄 일까지 있었다. 아직까지 집이 몰수당했다는 얘기는 들려오지 않는다. 「리비아의 날씨와 법은 믿지 말라」는 말도 있듯이 리비아인들은 이번 정화법 시행도 잠시 웅크리면 피할 수 있는 서슬퍼런 몽둥이 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다. 이 평 복 <트리폴리 무역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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