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백범 암살범의 피살

  • 입력 1996년 10월 24일 20시 30분


白凡 金九선생의 암살범 安斗熙씨의 피살사건을 보는 일반의 시각은 착잡하고도 복합적이다. 자신이 뿌린 폭력의 씨앗을 스스로 거둬들인 결과라고는 해도 민족지도자를 저격한 암살자가 또다른 폭력의 손에 암살됐다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무엇보다 그의 죽음으로 백범암살의 진상이 영원한 미궁(迷宮)속으로 빠져들게 되었으니 역사의 아쉬움은 크다. 1949년 6월 건국초 소용돌이속에 터져나온 백범암살은 역사의 물줄기를 바꿔놓은 엄청난 민족적 비극이었다. 암살범 安씨에 대한 석연찮은 사법처리와 그를 둘러싼 갖가지 추측과 배후의혹설이 난무했으나 완전한 진상은 가려지지않은 채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런 가운데 잇단 피습과 생명의 위협속에 가명을 쓰며 숨어 살아오던 安씨마저 한 습격자의 몽둥이에 맞아 참담하게 생을 마친 것이다. 자수한 安씨살해범은 『정의를 위해 민족반역자를 응징했다』고 말했다. 그 뜻은 알겠으나 죄과를 응징하는 방법으로 폭력을 동원한 것은 큰 잘못이다. 아무리 역사적 공분(公憤)이 크다해도 사적(私的)으로, 그것도 테러같은 폭력수단을 동원하는 것은 법치국가에서는 결코 정당화 될 수 없다. 의협심과는 별개로 법에 따른 처벌은 달게 받아야 한다. 폭력의 악순환을 막기위해서도 그렇다. 건국후 지금까지 역사적 진실규명작업에 투철했던들 하나의 테러가 또다른 테러를 불러오는 이런 참극은 없었을 것이다. 安씨의 피살로 어렵게는 됐지만 지금도 마음만 먹으면 진상규명이 아주 늦은 것은 아니다. 安씨가 남긴 방대한 녹음테이프하며 관련자료는 많다. 역사바로세우기 차원에서 뿐만 아니라 민족정기를 바로잡기 위해서도 백범암살의 진상규명 노력은 계속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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