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슬프게 하는 「장군」들

  • 입력 1996년 10월 21일 21시 02분


어쩌면 세계에 딱 하나 뿐인 기구일지도 모른다. 경찰 검찰 감사원같은 조직이야 어느 나라에나 있겠지만, 거기에 「부정을 방지하기 위한 대책위원회」를 따로 둔다 는 얘기는 듣기 어렵다. 부정방지대책위원회. 아는 분은 많지 않을지 모르지만 감사원의 한 기구로 지금도 월례회의가 열리는 조직이다. 그 구성은 예를 들면 徐英勳위원장을 비롯해 孫鳳鎬 金哲洙교수 金昌國변호사 印名鎭목사같은 명망있는 분들이 위원으로 참여하는 데서 보듯이, 「그렇고 그런」 위원회가 아니다. 현정부의 개혁 드라이브 바람속에 생긴 것이다. 보기에 따라서는 암행어사 못지않 은 위세라도 있는듯 하다. 공무원들이 오금을 제대로 펴지 못하는 감사원 회의실을 쓰는 것이나 감사원장 자문기구라는 성격도 그렇다. 그러나 회의 분위기는 오히려 그 반대다. 공직부패를 어디서부터 손 써야 할지 모 른다는 무력감, 위원회에서 아무리 떠들어도 소용없다는 자조가 지배한다. 때로는 비통한 탄식도 흘러 나온다. 졸견(拙見)뿐인 필자가 어쩌다 이 위원회 말석에 앉게 되어 느끼고 본대로 정확히 전하면 그렇다. 위원들은 대부분 공직사회의 부정 부패를 막아본다고 몇년째 머리를 싸매고 노력 해 왔건만 모두 허사가 돼버린 것만 같아 허탈해 한다. 심지어 『우리가 회의 참석 비 받고 여기 앉아 있는 것부터가 국민한테 죄짓는 짓이오』라고 목청을 높인 분도 계셨다. 솔직히 말해 「자폭론」이 제기된 것도 벌써 오래 전이다. 어차피 공직사회는 백 년하청(百年河淸)일 터이니, 시간이나 돈 낭비 할 것이 아니라 깨끗이 자폭 해체하 고 헤어지자는 의견도 나왔다. 분명한 것은 위원중 어느 분도 결연히 부방위 자폭을 반대하지 못했다. 그만큼 허무주의는 번져 있다. 지난 여름 「공무원의 부조리에 관한 의식조사」결과가 나왔을 때 모두들 절망하 다 못해 슬퍼했다. 공무원 1천2백28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는 개혁과 사정(司正)의 효과를 오히려 되묻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처벌의 형평성에 대한 반발이 심했다. 한마디로 고위직은 내버려두고 아래 사람들만 때리느냐는 것이었다. 고위직 공무원의 비리에 대한 처벌이 「약하다」는 응답이 76.7%, 중하위직 처벌이 「강하다」가 67.9%로 나타났다. 사정이 불공정하다 는 반응이 29.2%에 달했고 그것을 수용하지 않는다는 답변도 23.6%나 되었다. 이번 李養鎬전국방장관 의혹사건은 그런의미에서 부방위의 무력감과 의문들을 다 소 풀어주는 증빙일지 모르겠다. 깨끗한 정부를 외치며 대통령이 마음먹고 다그쳐도 믿고 기용한 국방장관이 국방정보를 업자에게 흘리고 돈거래를 했다. 6공때는 대통 령의 딸에게 편지를 써서 보직을 구걸한 그런 사람이었다. 장군 세계의 부정, 그 톱인 국방장관의 불법행위나 부패는 이제 부끄럽고 신물나 는 뉴스다. 공군참모총장만해도 韓周錫씨가 율곡비리로, 그 앞의 鄭用厚씨는 진급수 뢰로 구속되었다. 지난 10년간 국방장관을 지낸 8명가운데 李養鎬씨를 빼고도 네명이 갇히는 신세가 되었다. 鄭鎬溶 崔世昌씨는 반란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고 李相薰 李鍾九씨는 율곡 비리로 구속되었다. 吳滋福 權寧海 李炳台씨만 온전했다. 3인은 정확히 임기가 1년 이하였다는 점도 특이하다. 국무위원중 특히 서열 높고 가장 큰 예산을 주무르며, 그리고 60만 대군이 자다가 도 벌떡 일어나 경례붙이는 국방장관. 군인정신의 표상이어야 할 그들이 국민의 자 존심에 상처를 주고, 한없이 슬프게 한다. 그 「장관직」들을 부방위에 참고인으로 불러 물어 보면 뭔가 대책이 설 것만 같다. 김 충 식<정보과학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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