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펙트’를 ‘퍼펙트게임’이라 부르지 못한 SSG 폰트의 비애[이헌재의 B급 야구]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4월 4일 13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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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범 40주년을 맞은 2022 KBO리그에 개막전부터 대기록이 나올 뻔했습니다. 1982년 이후 작년까지 단 한 번도 없었던 ‘퍼펙트게임’이 바로 그 기록입니다.

SSG 랜더스 2년차 외국인 투수 윌머 폰트(32·베네수엘라)는 2일 열린 NC 다이노스와의 시즌 개막전에서 9이닝 동안 27명의 타자를 상대로 단 한 개의 안타나 사사구를 내주지 않고 무실점으로 완벽하게 틀어막았습니다. 한마디로 ‘퍼펙트’한 피칭을 한 것입니다.

문제는 SSG타선 역시 정규이닝인 9이닝 동안 한 점도 내지 못한 것입니다. SSG는 10회초 공격에서 4점을 올렸습니다. 하지만 폰트는 이미 몸 풀기를 중단하고 10회말 등판을 접은 후였지요.

어찌 보면 다소 허탈하게 40년만의 대기록은 무산되고 말았습니다. 퍼펙트게임이 성립되려면 해당 경기의 끝까지 책임져야 합니다. 비록 팀은 4-0으로 승리했지만 폰트는 페펙트 투수가 아닌 단지 선발승을 거둔 투수가 됐습니다.



사실 이런 기회가 언제 다시 찾아올 지는 누구도 알 수 없기에 실망을 표하는 팬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김원형 SSG 감독 역시 “팬들께 죄송하다”고 사과의 말을 전했습니다. 다만 그는 “사령탑으로서 냉정한 판단을 해야 했다”고 말했습니다.

이날 폰트의 투구 수는 104개였습니다. 선발 투수로서 그리 많은 투구 수라고 할 순 없습니다. 하지만 이날이 시즌 첫 번째 경기였고, 상대 에이스와의 대결이었던 만큼 피로도가 훨씬 컸다고 할 수 있습니다.

대개의 투수들은 시즌 초반 90~100개를 시작으로 시즌을 치러가면서 공 개수를 늘려갑니다. 5, 6월 정도 되면 120개 안팎의 공을 던지곤 합니다.

김 감독 역시 “폰트의 투구수를 90~95개라고 생각했다. 9회에 등판시키면서 105개가 한계라고 생각했다. 폰트가 9회를 마치고 내려왔을 때 여기까지 하자, 고생했다고 얘기했다, 본인도 많이 힘들어하는 상태였다”고 말했습니다.

실제 리그에서는 나오지 않았던 퍼펙트게임은 동명의 영화로 제작된 적이 있습니다. 박희곤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2011년 작 ‘페펙트게임’입니다.



KBO리그의 전설적인 두 투수 최동원과 선동열의 맞대결을 그린 바로 그 작품입니다. 이날 두 투수들의 피칭은 기록적으로는 퍼펙트피칭이 아니었습니다. 두 선수 모두 안타와 볼넷, 그리고 득점까지 허용했으니까요.

다만 두 투수들은 폰트가 하지 못했던 해당 경기를 끝까지 던지는 의미의 퍼펙트게임을 했습니다. 1987년 5월 16일 부산 사직구장에서 열린 경기에서 두 투수는 연장 15회까지 공을 뿌리며 2-2무승부를 기록했습니다. 단 4점밖에 나지 않은 그 경기는 무려 4시간 56분간 이어졌습니다. 최동원은 60타자를 상대로 209개의 공을 던졌고, 선동열은 56명의 타자에게 232개의 공을 던졌습니다. 그렇게 영화에나 나올 법한 ‘퍼펙트게임’이 치러진 것이지요.

지금과 당시는 많은 게 달라졌습니다. 최동원과 선동열이 활약했던 당시에는 투수 수 조절이라는 개념이 지금처럼 강하지 않았습니다. 감독이 던지라면 던졌고, 감독이 던지지 말라고 해도 자신이 알아서 던지곤 했던 때입니다.

눈앞에서 날아간 폰트의 대기록을 보면 어쩔 수 없이 당시의 투혼이 조금은 그리워집니다. 요즘은 많은 투수들은 자신의 한계를 일찌감치 결정지어 버리곤 합니다. 예전 선발 투수의 목표는 한 경기를 완전히 던지는 것이었다면 지금은 많은 투수들이 퀄리티 스타트(선발 6이닝 이상 3자책 이하)에 만족하곤 합니다. 덕분에 예전보다 부상에 시달리며 일찍 선수 생활을 접는 경우가 줄어들었습니다. 반대 급부로 팬들을 감동시켰던 스토리도 많이 줄어즐었지요.

이미 꼰대가 된 아재 야구팬의 한 명으로 1984년 한국시리즈에서 4승을 모두 책임진 최동원이 남긴 명언이 새삼 떠오릅니다. “마, 함 해 보입시더.”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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