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헐크’ 이만수의 꿈 “라오스에서 세계대회 유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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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년 2월 5일 07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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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말리는 승부의 세계를 떠난지 벌써 5년째. 헐크 이만수의 얼굴에는 승부사의 냉철함이 아닌 이웃집 아저씨같은 인자한 미소가 감돌았다. 재능기부와 봉사로 정신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이만수(61) 헐크파운데이션 이사장을 1월 마지막날 인천 연수구에 위치한 호텔 카페에서 만났다.

반가운 인사를 나눈 것도 잠시, 이만수 이사장은 짐짓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내년 1회 대회 개최를 목표로 하고 있는 중학교 야구대회 창설에 약간의 문제가 생겼기 때문이다.

이만수 이사장은 “중학교 전국 대회는 3개 밖에 없는 실정”이라며 안타까워하면서도 “계속 준비를 하다보면 좋은 결과가 있지 않겠느냐”고 감독 시절 트레이드마크였던 ‘네버 에버 기브업(절대 포기하지 않는다)’을 외쳤다.

이만수 이사장은 2014년을 끝으로 SK 와이번스 감독직에서 물러난 이후 ‘봉사하는 삶’을 살고 있다. 프로야구 현장에서는 멀어졌지만 여전히 그는 야구인이다. 프로의 세계에서 좋은 성적을 내는 것보다 어쩌면 더 중요한 가치를 찾아 움직이고 있는지도 모른다.

라오스에 야구의 씨앗을 뿌리고 국내 유소년 야구를 위해 피칭머신을 기부하는 등 이만수 감독의 선행이 알려지면서 야구팬들은 그의 프로야구 복귀를 바라는 목소리를 내기도 한다. 그러나 이만수 이사장은 현장으로 돌아갈 생각이 조금도 없다.

이만수 이사장은 “50년 동안 야구를 통해 받은 사랑을 돌려줘야 할 때”라며 “프로야구 현장은 내가 없어도 돌아간다. 그러나 지금 나는 내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들을 하고 있다”고 책임감을 드러냈다.

-여전히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것 같다. 얼마 전에는 재능기부 활동을 펼쳤다고 들었다.

▶부천의 신도초등학교 야구부 송선목 감독이 장문의 메시지를 보내왔어요. 학부모들에게 동계 훈련비 부담을 주기 싫어 겨우내 학교에서 훈련을 하기로 했는데 와서 훈련 지도를 좀 해줄 수 없겠냐고요. 그 메시지에 마음이 움직여 학교를 방문해 아이들을 지도하고 왔습니다.

의왕에 있는 부곡초등학교에서도 연락이 왔습니다. 구정이 끝나자마자 8일과 9일, 이틀 동안 또 방문하기로 했어요. 한 곳에서 2~3일 지도를 하는데, 현재 방문 요청이 들어와 있는 곳이 30군데가 넘어요. 부산, 대구, 제주도까지 지역도 다양해요. 전부 방문을 할 수 있을지 걱정입니다.

-2017년 1월부터 시작한 피칭머신 후원 프로젝트가 지난해 말 막을 내렸다. 피칭머신 총 27대가 학생 야구 선수들에게 전달됐다. 이 밖에도 라오스 야구를 위해 힘쓰는 등 좋은 모습으로 현장을 떠난 뒤에 팬들이 더 많아진 것 같다.

▶미국에서 지도자 생활을 하던 시절, 미국의 야구인들은 봉사하는 것이 몸에 배어 있더라고요. 그걸 보고 나도 나중에 저렇게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50년 동안 야구로 많은 사랑을 받았기 때문에 이제는 그 사랑을 나눠줘야 할 시기가 왔다고 생각해요.

또 하나는, 어느 분야건 선구자가 있어야 하는데 야구계에는 없었어요. 나도 내가 이렇게 오래 이 일을 하고 있을 줄 몰랐어요. 야구계도 사회공헌, 봉사같은 것을 할 수 있다는 인식을 만들고 다음 주자에게 배턴을 넘겨주려고 했는데, 벌써 5년이 지났네요.

-최근에는 라오스의 여자야구가 주목을 받고 있다. 전담 지도자가 파견돼 발전 속도가 상당히 빠르다고 들었다.

▶지난해 라오스에 파견한 박상수 전 충주 성심학교 감독이 여자야구를 맡았어요. 등록된 선수 숫자만 30명이 넘습니다. 야구를 하려는 라오스 여자 선수들이 많습니다.

라오스는 모계사회 성격이 강해 여자들의 승부욕이 더 강합니다. 남자 선수들은 경기에 지고 들어와도 ‘보뺀냥(괜찮아)’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데 여자 선수들은 눈물을 흘립니다.

여자팀에 여자 지도자가 있으면 더 좋을 것 같아서 이번에는 여자 야구 국가대표였던 황세원 선수를 파견하기로 했어요. 황세원 선수가 고민 끝에 수락을 해줬고 3월에 건너가기로 했습니다.

다니던 좋은 직장을 포기하고 봉사한다는 생각으로 나가는 겁니다. 타지에 나가 있으면 외롭고 힘들 것이라고 얘기를 해줬는데, 황세원 선수의 아버지께서 적극 권유를 하셨다고 하더군요. 저도 ‘잃는 것이 있겠지만 얻는 것도 수없이 많을 것이다. 그게 인생의 보람이고 가치다’라고 말해줬습니다.

-여러가지 활동을 하려면 비용이 많이 들텐데 어떻게 해결하나. 사재를 털었다는 얘기도 들었다.

▶처음에는 재산도 많이 풀고 했었다. 또 헐크파운데이션이라는 재단을 설립해서 기금을 마련했습니다. 재단의 기금은 개미군단들이 만원 씩 기부해서 만든 것이기 때문에 함부로 사용할 수 없어요. 그래서 항상 조심스럽게 활동을 합니다.

다행히 아내도 많이 이해를 해줍니다. 그동안 받은 사랑을 돌려주라는 얘기도 해줘요. 자기가 숟가락 못 들 때까지만 하라는 말을 하면서 아직까지는 숟가락을 들 수 있다고 하네요.

이 일을 하면서 많은 것을 깨달았습니다. 처음에는 ‘이 좋은 일을 사람들이 왜 안하려고 하지’라고 생각했는데 달리 생각해보니 처자식 두고 봉사활동을 한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쉬운 일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SK 와이번스에 대한 감정은 여전히 특별한 것 같다. 지난해 SK가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하자 SNS에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고 적기도 했는데.

▶국내에서 지도자 생활을 처음 시작한 곳이 SK였고, 미국에서 돌아와 정착한 곳이 인천이에요. 우승할 때 정말 기쁘더라고요. 일종의 대리만족이었습니다. 지금도 SK 구단주님과는 연락을 주고받습니다. 우승 축승연에도 아내와 함께 초대를 받았어요.

-프로야구의 세계로 돌아올 생각은 없나. 아직도 삼성 팬들의 지지가 높다. SK 팬들 중에도 그리워하는 이들이 많다.

▶현장으로 돌아가려고 생각하면 이 일을 못합니다. 피가 말리고 내 인생이 없어져요. 돌아갈 생각을 했다면 지금 하고 있는 일을 기쁘게 하지 못했을 겁니다. 월드시리즈 우승(시카고 화이트삭스 코치), 한국시리즈 우승(SK 코치) 다 해봤기 때문에 미련이 없어요. 지금 하고 있는 이 일은 내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반면에 현장은 내가 아니더라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아요.

지금도 야구는 챙겨봅니다. 꼰대가 되지 않으려면 야구의 흐름을 알아야 해요. 재능기부를 하면서 어린 선수들에게 ‘예전에 이랬다’고 말하면 꼰대가 돼요. 현장에는 없지만 여전히 나는 야구인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어요.

-FA 양의지가 125억원이라는 거액을 받고 두산 베어스에서 NC 다이노스로 팀을 옮겼다. 양의지의 이적을 보는 생각도 남달랐을 것 같다.

▶좋은 일인 것 같아요. 많은 금액 때문에 위화감도 있었겠지만, 양의지와 강민호 같은 선수가 있으면서 포수를 하려는 어린 선수들이 많아졌기 때문이에요. 얼마전에 방문했던 신도초등학교에도 포수를 하는 선수가 어릴 때부터 포수를 했다고 하더라고요.

내가 현역 때 지금같은 FA 시장이 있었으면 어땠을까라는 질문도 많이 받습니다. 하지만 아쉽지는 않습니다. 우리 선배들도 우리를 보면서 시대가 좋아졌다는 말을 했어요. 시대가 흐를수록 점점 프로야구가 발전해 나가는 것이 당연한 이치입니다.

-마지막으로 야구인 이만수의 꿈은 무엇인가.
▶라오스에 야구장을 지어서 세계대회를 유치하는 것이 마지막 목표입니다. 현재 라오스 정부로부터 야구장 부지 2만1000평을 확보해놓은 상태입니다. 야구장 건설에 필요한 자금을 지원해줄 스폰서도 찾았어요.

라오스는 11월부터 2월까지 4개월 동안 건기라 비가 안오고 습하지도 않아 야구하기가 참 좋은 날씨에요. 야구장을 짓는다면 일단 국내 학생 야구 선수들이 전지훈련을 오기도 좋고, 대회도 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KBO리그 구단도 3군 정도는 훈련을 오면 좋지 않을까 싶어요.

요즘에는 선수들이 개인훈련을 하러 해외로 나가는 경우도 많은데 비싼 곳보다 저렴한 라오스에서 훈련하는 것도 괜찮고요. 만약 한국 선수들이 온다면 라오스 사람들도 야구를 더 많이 접할 수 있지 않겠어요.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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