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인터뷰] 야생마 동경하던 김광현, 이젠 누군가의 롤모델로

  • 스포츠동아
  • 입력 2018년 8월 10일 05시 30분


‘롤모델의 책임감’ SK 와이번스 김광현은 어릴 적 LG 트윈스 좌완투수 이상훈을 롤모델로 삼으며 야구선수로의 꿈을 키웠다. 누군가를 바라보며 공을 던진 그가 이제는 또 다른 누군가 롤모델이 되어 활약하고 있다. 김광현은 “책임감”을 강조하며 ‘에이스’로서의 숙명에 대해 설명했다. 사진은 팀 동료의 호수비에 환호하고 있는 김광현. 스포츠동아DB
‘롤모델의 책임감’ SK 와이번스 김광현은 어릴 적 LG 트윈스 좌완투수 이상훈을 롤모델로 삼으며 야구선수로의 꿈을 키웠다. 누군가를 바라보며 공을 던진 그가 이제는 또 다른 누군가 롤모델이 되어 활약하고 있다. 김광현은 “책임감”을 강조하며 ‘에이스’로서의 숙명에 대해 설명했다. 사진은 팀 동료의 호수비에 환호하고 있는 김광현. 스포츠동아DB
‘에이스’가 돌아왔다. 비룡군단의 상징 김광현(30·SK 와이번스)은 1년의 공백을 뒤로한 채 올 시즌 에이스의 면모를 뽐내고 있다.

10년 넘게 쉴 틈 없이 달려온 그는 지난해 팔꿈치 인대접합수술(토미존 서저리)을 받은 뒤 안식년을 가졌다. 올 시즌 복귀했는데 공백은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위력적인 모습이다. 그간 쌓은 경험에 처음 겪는 긴 재활까지 더해져서일까. 요즘 김광현은 예전에 비해 몇 배는 더욱 성숙해진 모습이다. 그가 말하는 에이스의 책임감과 역할에 대해 들어봤다.

● 걱정 앞선 복귀 시즌, 결과는 대만족

-1년의 공백이 믿기지 않는다. 스스로도 이만큼 잘할 거라는 믿음이 있었나.


“대외적으로는 그랬다(웃음). 자신 있다고 말은 했지만, 내심 걱정은 많았다. 수술을 했던 상태라 속으로는 조심스러웠다. 지금의 성적은 분명 기대 이상이다. 하지만 내가 잘해서 이뤄낸 결과는 결코 아니다. 구단에서 철저히 관리를 해주는 덕분이다. 이닝과 투구수 제한을 걸었고, 그에 맞춰 등판 일정을 조정해준다. 고마울 따름이다.”

-올 시즌 들어 적은 투구수로 긴 이닝을 소화하고 있다. 의식하는 것 같은데.

“손혁 코치님 덕분이다. 과거에는 볼카운트 2S처럼 유리한 상황에서 안타를 맞았을 때 많이 혼났다. 아마추어 때부터 이에 대한 강박이 생긴 것이다. 하지만 손 코치님의 지론은 달랐다. 코치님이 볼카운트별 피안타율 자료를 보여주셨다. 2S에서는 어떠한 타자라도 타율이 1할대였다. 바꿔 말하면, 2S에서 안타를 하나 맞는다면 통계적으로 아홉 번은 범타처리 할 수 있다는 것 아닌가. 그 마인드 변화가 공격적 투구로 이어졌고, 결과도 좋다.”

-철저한 관리가 무조건 이득일 것 같지는 않은데.

“관리에 대해서는 감독님과 구단 모두에 전적으로 감사드린다. 단, 등판 간격이 길어지면 확실히 근육이 뭉치는 것 같다. 경기에 나갔을 때 투구수나 이닝도 중요하지만 등판 간격도 그에 못지않다. 이듬해부터는 다른 투수들처럼 특별 관리 없이 경기를 소화해야 하는데 내심 걱정도 된다. 거친 투구폼으로 주목을 받았는데 많이 얌전해진 것도 수술 전과 후의 차이다. 대신 구속은 확실히 올랐다.”

SK 김광현. 스포츠동아DB
SK 김광현. 스포츠동아DB

● 성숙을 말하는 누군가의 롤모델 김광현

김광현은 입단 첫해인 2007년부터 한국시리즈 우승을 경험했다. 두산과의 한국시리즈에서 당대 최고의 외인 투수였던 다니엘 리오스와 맞상대해 7.1이닝 무실점 역투로 야구팬들의 눈도장을 확실히 받았다. 2010년까지 입단 첫 4년간 세 번의 한국시리즈 우승. 하지만 이후 줄곧 우승이 없다. 화려했던 초반 커리어에 비해 중반이 아직 아쉬운 셈이다.

-2010년이 마지막 우승이다. 어느새 우승이 그리울 것만 같다.

“아쉬우면서 반성도 하게 된다. 내 입단 첫해부터 팀 성적이 좋았고, 개인적으로도 야구가 잘 풀렸다. 하지만 몇 차례 부상도 겪었고 팀은 중위권으로 떨어졌다. 하지만 야구라는 것은 결국 돌고 도는 것 같다. 이제 올라갈 차례라고 생각한다.”

-그때와 지금 팀 내 역할이 많이 다를 것 같다.

“어린 시절에는 아무 것도 모른 채 선배들이 시키는 운동만 했다. 그렇게 우승을 세 차례 경험했다. 지금은 경험자로서 후배들을 이끌고 돌봐야 하는 시기다. 부담이 있을 수밖에 없다. 어릴 때는 ‘못해도 본전’이었다면 지금은 반드시 잘해야 한다. 주위에서도 나에 대한 기대치가 있지 않나. 책임감이 생겼다는 점은 나에게도 긍정적인 결과로 이어질 것이다.”

-누군가를 롤모델로 삼고 야구를 했을 텐데, 이제 많은 후배들이 ‘김광현 선배가 롤모델’이라고 한다.

“격세지감이다(웃음). 내 롤모델은 ‘야생마’ 이상훈(전 LG) 코치님이시다. 야생마를 꿈꿨던 내가 이제는 누군가의 롤모델이라니. 뿌듯하고 신기하다. 비슷한 얘기인데, 얼마 전 모 중계방송에서 나를 두고 ‘역시 김광현은 김광현이다’라는 코멘트를 했다. 야구를 시작하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롤모델이라든가 내 존재를 인정하는 발언은 하나하나가 힘과 책임감을 준다.”

SK 김광현. 스포츠동아DB
SK 김광현. 스포츠동아DB

● 에이스의 자격, 팬은 물론 사회적 역할까지 고민

김광현은 지난해 재활 내내 이발을 하지 않았다. 스프링캠프 때 간만에 모습을 드러낸 그는 어색한 장발이었다. 그는 “복귀 첫 승을 하면 이발하겠다”고 밝혔고, 첫 등판에서 약속을 지켰다. 그가 재활 내내 기른 머리칼은 소아암 환우들에게 전달됐다. 힐만 감독과 SK의 제안을 선뜻 받아들인 김광현이다.

-개인 100승 때 특별 글러브를 제작해 기부에 활용했다. 머리칼 기부도 그렇고, 사회 활동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

“구단 덕분이다. 어릴 때는 야구만 하기 바빴다. 솔직히 사회적인 부분에 대한 관심을 가질 여력이 없었다. 그런 내게 구단에서 이런저런 제안을 해주시고, 취지가 좋으니 선뜻 동참할 수밖에 없다. 아무 것도 몰랐던 내가 이제는 기부를 하는 것처럼 팬들도 긍정적 영향을 받았으면 좋겠다. 과거에는 소아암 환우들에게 머리칼 기부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많이들 모르셨을 것이다. 이제 적어도 SK 팬들은 아시지 않을까. 나로 인해 한 사람이라도 그런 움직임에 동참한다면 정말 뿌듯할 것 같다.”

-최근 팀 동료가 홈런을 치면 기념 인형을 빼앗아(?) 팬들에게 대신 던져준다.

“홈경기에서만 가능한 팬 서비스다. 처음에는 홈런 치고 한 바퀴 도느라 힘들었을 야수들에 대한 배려로 시작했다. 팬들이 좋아해주시니 기분 좋을 뿐이다. 앞으로도 이어갈 생각이다.”

-어느새 입단 12년 차다. 야구인생을 돌아본다면.

“아직 반환점이라고 생각한다. 25년 이상 야구하는 선배들도 있다. 그들처럼 되고 싶다. 걸어온 시간만큼 걸어갈 시간이 남았다. 종착지 근처가 되면 돌아보고 싶다. 지금은 바쁘게 스파이크 끈을 묶을 때다.”

인천|최익래 기자 ing1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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