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건의 아날로그 스포츠] 수비 시프트가 가져온 야구기록법의 변화

  • 스포츠동아
  • 입력 2018년 4월 10일 11시 4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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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헨리 채드윅.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헨리 채드윅.
야구 기록의 아버지는 스포츠 기자 헨리 채드윅
야구 해설가 고 이호헌 선생이 한국식 야구기록의 시초
LA 다저스 혁신 수비시프트 때 나온 알쏭달쏭 기록 상황, 5-1A, 3-1A?


요즘 야구의 새로운 트랜드가 된 수비 시프트가 100여년 이상 이어온 야구기록 방식에 변화를 줄 가능성이 생겼다. 야구기록의 아버지는 미국의 헨리 채드윅이다. 스포츠 기자였던 그가 1856년 크리켓의 스코어카드를 응용해 야구용 스코어박스를 고안해낸 것이 야구기록의 시작으로 본다.

채드윅은 선수들의 수비위치에 번호(투수 1번, 포수 2번, 내야수 3~6번, 외야수 7~9번)를 붙이고 삼진을 K라고 표시하는 등 다양한 기호를 도입해 경기를 압축시켰다. 이후 야구 기록방식은 차츰 진화했다. 그 덕분에 기록지만 봐도 타구가 어느 방향으로 갔고 수비수가 어떻게 그 타구를 처리했는지를 알게 된 야구는 누구나 복기가 가능한 흥미로운 멘탈게임이 됐다.

야구가 대중 스포츠로 오랜 생명력을 갖게 된 것은 기록법을 고안해낸 채드윅의 공이다. 그래서 야구백과사전의 저자 폴 딕슨은 “세상은 두 종류의 야구팬으로 나뉜다. 한 사람은 경기를 기록하면서 보는 사람, 다른 한사람은 그 경지에 도달하지 못한 사람”이라고 했다.

● 베이스볼과 야큐 그리고 야구

우리나라에 야구가 도입된 것은 1904년이다. 미국인 필립 질레트가 YMCA 선교단으로 조선 땅을 밟은 뒤 선교활동을 위해 야구 장비를 도입해온 것을 시초로 본다. 야구 기록법은 한참 시간이 지난 뒤 일본을 거쳐 들어왔다.

강제 개항을 통해 서양문물을 우리보다 빨리 받아들인 일본은 1872년에 야구를 미국에서 받아들였다. 학교를 중심으로 큰 인기를 누린 일본의 야구는 슈이 도바시라는 선구자 덕분에 일본인의 정신세계에 맞는 새로운 경기로 재탄생했다. 그는 무사도에 바탕(투타의 대결을 사무라이들의 맞대결로 생각)을 두고 팀을 위한 개인의 희생(일본야구가 그토록 희생번트를 강조하는 이유)과 극기(스프링캠프 때 이벤트로 하는 1000번의 내야수비 펑고)를 강조했다.

결국 미국의 베이스볼은 일본으로 넘어오면서 야큐(野球)가 됐고 대한해협을 건너 야구가 됐다. 일본은 야구를 받아들이면서 용어도 일본식으로 바꿨다. 야구도 그때 탄생한 말이다. 퍼스트베이스맨은 1루수, 숏스탑은 유격수, 센터필더는 중견수가 됐다. 지금 우리가 쓰는 야구용어는 그때 대부분 만들어졌다.

도바시는 1925년 미국의 야구기록 방식도 일본에 맞게 바꿨다. 이 방식은 지금도 통용된다. 이를 우리나라에 들어오면서 또 한번의 업그레이드를 한 사람이 야구해설가로 유명한 고(故) 이호헌 선생이다. 그는 일본의 관련서적을 보고 연구한 끝에 새로 개발한 기록방법을 주위에 널리 알렸다. 효능을 인정한 대한야구협회가 1963년 서울에서 개최된 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에 공식 기록원 임무를 맡긴 것이 우리 야구기록의 시초다.

● 다저스의 혁신적인 시프트, 100년 전통의 야구기록법은

LA 다저스의 류현진이 시즌 첫 등판했던 지난 3일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와의 경기에서 흥미로운 장면이 나왔다. 2회 말 애리조나의 공격 제이크 램 타석에서 다저스는 시프트 수비를 했다. 끌어당기는 왼손타자에 맞춰 내야 수비수를 1루수 쪽으로 옮겼다. 보통은 3루수가 유격수 자리에, 유격수가 2루 부근에, 2루수는 좀더 1루수 쪽으로 다가가는 형태지만 다저스의 시프트는 혁신적이었다. 3루수 로건 포사이드를 1루수와 2루수 사이에 배치했다.

램이 친 타구는 공교롭게도 1루수 코리 벨린저의 미트를 맞고 뒤로 나갔다. 평소라면 우전안타였겠지만 시프트를 통해 1루수 뒤에서 촘촘하게 수비 그물을 짜던 3루수 포사이드가 공을 잡았다. 류현진은 1루 쪽으로 타구가 향하자 재빨리 1루 베이스 커버에 들어갔다. 그 덕분에 포사이드의 송구를 잘 받아 타자주자를 포스 아웃시켰다.

여기서 생긴 궁금증. 과연 공식 기록법에서는 이 상황을 어떻게 표시할까.

김제원 KBO 기록위원장은 스포츠동아의 질문에 “현재로서는 5-1A라고 표기하는 방법 밖에는 없다”고 했다. 채드윅의 기록방식에 따르면 5-1A는 3루수가 자신에게 오는 땅볼을 잡아서 투수에게 연결, 1루(A)에서 투수가 타자주자를 포스 아웃시킨 것을 의미한다.

문제는 타구의 방향이다. 분명히 포사이드는 1루수 뒤에서 공을 잡아 송구했다. 경기를 있는 그대로 정확하게 기록하는 것이 야구기록의 목적이라면 이 상황은 3-1A로 표기하는 것이 맞다.

그러나 이렇게 하면 통계에서 문제가 생긴다. 야구기록을 하는 또 다른 이유는 경기장에서 벌어진 모든 플레이를 단계별로 나눠 정확한 통계수치를 만들기 위해서다. 그 상황에서 아웃카운트를 잡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선수(영어로는 put out, 한자식 표현은 자살)는 류현진이었다. 아웃카운트를 늘리는데 도움을 준 선수(assist, 보살이라고 부름)는 3루수 포사이드였다. 이 것을 타구방향으로만 기록한다면 자살, 보살의 통계수치가 틀려진다.

김 위원장은 “시프트가 갈수록 많아지는 상황에서 우리도 이런 상황을 적절하게 표현하는 새로운 기록법을 찾아야 한다. 현재는 기존의 방식을 쓰고 옆에 따로 설명을 붙이지만 더 합리적인 방안을 생각 중이다. 아직 일본과 미국도 이런 상황을 어떻게 기록할지 결정된 것은 없다”고 했다. 그는 “3루수가 1루수 옆에 있었으니까 이번 상황은 5-1A라고 적은 뒤 5 옆이나 밑의 공간에 a,b 즉 1,2루 사이에서 3루수가 타구를 수비했다고 표기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방침”이라고 했다.

김종건 전문기자 marc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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