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올·림·픽, 좌절 직전 임효준 일으켜 세운 다섯 글자

  • 스포츠동아
  • 입력 2018년 2월 12일 05시 30분


임효준이 결국 해냈다. 개막 이튿날인 10일 강릉아이스아레나에서 펼쳐진 2018평창동계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1500m에서 개최국이자 쇼트트랙 최강인 한국에 대회 첫 금메달을 선사했다. 숱한 부상과 그에 따른 역경을 ‘평·창·올·림·픽’이라는 다섯 글자만을 가슴에 새긴 채 묵묵히 극복한 결과이기에 더욱 값지다. 임효준이 결승선을 1위로 통과한 뒤 포효하고 있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임효준이 결국 해냈다. 개막 이튿날인 10일 강릉아이스아레나에서 펼쳐진 2018평창동계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1500m에서 개최국이자 쇼트트랙 최강인 한국에 대회 첫 금메달을 선사했다. 숱한 부상과 그에 따른 역경을 ‘평·창·올·림·픽’이라는 다섯 글자만을 가슴에 새긴 채 묵묵히 극복한 결과이기에 더욱 값지다. 임효준이 결승선을 1위로 통과한 뒤 포효하고 있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평·창·올·림·픽’

누군가에게는 단순히 대형 스포츠 이벤트일 수 있지만, 임효준(21·한국체대)에게 그 다섯 글자가 주는 의미는 엄청났다. 2018평창동계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1500m 우승으로 한국 선수단에 첫 금메달을 선사한 그에게 ‘절체절명의 위기상황을 극복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을 묻자, 임효준은 “평창올림픽”이라고 또박또박 말했다. 글자 하나하나에 힘을 실어서 말이다.

● 유스올림픽 1000m 우승, 그 기쁨도 잠시…

임효준은 중학교 시절부터 한국쇼트트랙의 차세대 주자로 각광받았다. 2012년 제1회 동계유스올림픽 남자 1000m 금메달을 따냈을 때 그의 나이는 15세였다. 앞날이 탄탄대로인 듯했다. 그러나 숱한 부상이 발목을 잡았다. 발목 인대와 손목, 정강이 등 다치지 않은 곳이 없다. 특히 2년 전에는 허리 압박골절이라는 큰 부상을 당했다. 시즌 아웃 차원을 넘어 선수생명을 위협할 만한 악재였다. “허리뼈가 부러졌을 때는 그만두고 싶었다. ‘쇼트트랙을 하다가 죽겠구나’ 싶었다. 소속팀(한국체대) 동료들도 ‘형은 이거(쇼트트랙) 하다가 죽겠어’라고 말했을 정도다.” 10일 강릉아이스아레나에서 1500m 금메달을 따낸 직후 지난 날을 회상하던 임효준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간의 아픔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남자 쇼트트랙대표 임효준.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남자 쇼트트랙대표 임효준.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 대표선발전 1위, ‘임효준 시대’의 서막

숱한 부상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았다. 평창올림픽 무대에 서겠다는 각오 하나로 모든 것을 걸었다. 전체 1위로 2017~2018시즌 국가대표선발전을 통과하며 평창올림픽 개인전 출전권을 따냈고,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월드컵 1차대회(헝가리 부다페스트) 1000m와 1500m에서 금메달, 500m에서 은메달을 목에 걸며 존재감을 각인했다. 체격이 작지만, 폭발적 스피드를 앞세워 아웃코스를 추월하는 기술이 일품이었다. 몸집이 큰 유럽 선수들 사이에서도 밀리지 않았다. 이는 꾸준한 훈련을 통해 힘을 키운 덕분이다. 상대 선수와 동선이 겹치는 상황에서도 여유 있게 자리를 잡는 기술이 바로 여기서 비롯한 것이다.

남자 쇼트트랙대표 임효준.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남자 쇼트트랙대표 임효준.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 또 하나의 적, ‘긴장감’을 이기다!

쇼트트랙은 변수가 많은 종목이다. 아무리 기술이 뛰어나도 경기 당일의 컨디션과 빙질, 상대 선수의 전략에 따라 순위가 바뀔 수 있다. 특히 결승에선 1위로 달리다가 다른 선수가 마음먹고 반칙을 감행해 넘어지더라도 구제받을 수 없다. 반칙을 저지른 선수가 실격을 당해도 넘어진 선수의 본래 순위가 돌아오는 것은 아니다. 이 같은 변수에 대처할 수 있는 멘탈(정신력)도 중요한 요소다. 임효준은 1500m 경기 당일까지 한시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그 긴장이 풀린 순간은 예선 직후였다. “예선 들어가기 전에는 정말 많이 떨렸는데, 오히려 통과하고 나니 긴장이 많이 풀렸다. 다른 선수들이 타는 모습을 보니 컨디션이 별로 좋지 않은 것 같았다.”

중국 선수 세 명이 포진해 모두를 불안하게 했던 준결승 상황에 대해서도 임효준은 “처음에는 ‘큰일 났다. 어떻게 하지’ 싶었다. 중국 선수 세 명을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 걱정이 앞섰다. 나만 있으면 괜찮지만 (황)대헌이도 같은 조라 어떻게 팀플레이를 할지 고민했다. 하지만 정신을 차리고 보니 오히려 자신이 있었다. (중국 선수들의 컨디션이) 썩 좋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 침착하게 경기했다”고 돌아봤다. 빙판에 적응하고 자신감을 얻자 긴장감은 눈 녹듯 사라졌다. 김선태 대표팀 감독은 임효준에게 “뭔가를 하려고 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했고, 임효준은 평소 스타일대로 편안하게 빙판을 갈랐다. 김 감독은 임효준이 금메달을 확정한 직후 그를 끌어안으며 이 같이 말했다. “그것 봐. 되잖아.”

남자 쇼트트랙대표 임효준.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남자 쇼트트랙대표 임효준.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 ‘평·창·올·림·픽’ 다섯 글자의 무게감

7번의 수술. 빙판에서 모든 힘을 쏟아내야 하는 쇼트트랙 선수로선 사형선고나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효준은 모든 악재를 슬기롭게 극복하고 세계 정상에 섰다. 그 배경이 궁금해 질문을 던졌다. “내게는 명확한 꿈이 있었다. 평창올림픽 하나만 보고 달려왔다. 누구보다 잘하고 싶었고, 금메달을 따고 싶었다. 평창올림픽만 생각하며 모든 고통을 이겨낼 수 있었다.”

임효준은 ‘우승을 확정한 직후 어떤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냐’는 기자의 질문을 받고는 “오히려 월드컵 1차대회에서 우승했을 때가 더 기분이 좋았다”는 말부터 했다. 그토록 기다려온 임효준의 평창올림픽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선전포고로 들렸다. “아직 경기가 끝난 게 아니니 마음을 가라앉히고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처음부터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잘 준비해서 끝날 때 웃겠다. 무엇보다 22일에 열리는 5000m 계주에선 꼭 금메달을 가져오고 싶다. 죽을 각오로 하겠다.” 만족을 모르는 사나이의 말에는 큰 울림이 있었다.

● 임효준

▲생년월일=1996년 5월 29일(대구)
▲키·몸무게=168cm·65kg
▲출신교=계성초∼오륜중∼동북고∼한국체육대학교
▲주요 성적=2012년 제1회 동계유스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1000m 금메달, 2017∼2018시즌 ISU 쇼트트랙 월드컵 1차대회 1000·1500m 금메달
▲세계랭킹=남자 1500m 4위, 남자 1000m 6위

강릉 | 강산 기자 posterbo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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