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상황 대처 어려운 ‘선수촌 병원’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2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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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리클리닉 부실” 제보 잇달아
신경-정형외과, 응급실과 멀고 전자의무기록시스템도 호환 안돼
가건물에 설치, 혹한-폭설에 취약… 의료진 숙소도 타지역에 제공
서울대 자체비용 들여 근처로 옮겨

강원 강릉시 강릉선수촌 단지에 가건물로 설치된 폴리클리닉.
강원 강릉시 강릉선수촌 단지에 가건물로 설치된 폴리클리닉.
평창 겨울올림픽 선수촌 내 의료서비스를 지원하는 ‘폴리클리닉’의 시스템과 시설이 부실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강릉선수촌 클리닉 관계자들은 클리닉 내 동선이 비효율적이라고 지적한다. 응급환자가 발생했을 때 가장 밀접하게 움직여야 할 신경외과 및 정형외과가 응급실과 가장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이다. 겨울올림픽 특성상 외상을 입는 선수들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클리닉 내 응급실과 신경외과의 동선 사이에 대기 시간이 비교적 긴 치과 등 다른 과는 물론이고 외래환자 대기 공간까지 포진했다.

클리닉 개소 전 현장에 투입될 서울대병원 의료진은 동선의 비효율성을 지적하고 평창동계올림픽조직위원회에 구조 변경을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한 관계자는 “올림픽이 가까워지고 방문자가 많아지면 의료진이 응급환자를 보러 갈 때 일반 환자 사이를 뚫고 가야 하는 아주 비효율적인 구조”라고 말했다.

클리닉 내에 구축된 전자의무기록(EMR) 시스템이 의료진이 기존에 사용하던 시스템과 달라 엇박자가 날 수도 있다. 의료진이 갖고 온 의약품 중 일부는 시스템상에 아예 등록되지 않았다. 의사가 전자시스템으로 ‘약품 A’를 처방할 때 시스템상에 약품 A가 등록되지 않아 비슷한 성분의 ‘약품 B’를 입력한 뒤 약제과에 설명하면 약제과에서 약품 A를 조제하는 일이 벌어진다는 것이다. 처방과 다른 약을 환자가 복용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이에 일부 의사는 사고를 막기 위해 손으로 직접 처방전을 작성하고 있다고 한다.

시설도 부실하다. 선수촌은 대회가 끝난 뒤 분양될 아파트 단지이기 때문에 식당과 우체국 등 편의시설 대부분이 올림픽 기간 중 가건물로 세워졌다. 환자들을 맞는 클리닉도 단지 중앙에 세워진 가건물로, 내부 공간도 대부분 가연성 자재로 이뤄졌다. 건물 보온도 잘 안 돼 개소 초반 내부 근무자들은 겨울점퍼를 입고 근무하는 등 추위와의 전쟁을 벌였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들이 조사를 나와 “‘서머 텐트(여름철용 텐트)’ 같다”는 지적을 한 뒤 열풍기 등이 보완됐다. 하지만 클리닉 지하에 있는 물리치료실 난방 문제는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 환자들의 체온 유지가 중요하기 때문에 보온 문제는 민감한 사안이다. 클리닉 관계자는 “겨울올림픽인데 병원시설을 가건물로 만든 건 문제가 있다. 강추위가 오거나 폭설이 내릴 경우 예기치 못한 문제가 생길 것”이라고 우려했다.

분초를 다투는 의료진의 숙소를 지나치게 먼 곳에 배정한 것도 비효율적이란 지적이 많이 나온다. 조직위는 강릉선수촌 내 의료진에게 차량으로 1시간 거리에 있는 속초의 한 콘도를 숙소로 제공했다. 오전 7시부터 오후 11시까지 상주하는 의료진이 숙소를 오가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이 걸린다. 위급 상황 시 빠른 대처도 불가능하다. 의료진을 파견한 서울대 측은 자체 비용을 들여 클리닉과 10분 거리에 있는 숙소를 구했다.

조직위 관계자는 “예산이 부족하다 보니 공정이 늦어져 완벽하게 서비스를 준비 못 한 부분이 있다. 미흡한 부분은 최대한 고치려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IOC에 따르면 2014년 소치 올림픽 당시 참가 선수 2780명 중 391명(14%)이 크고 작은 부상을 입어 폴리클리닉을 찾았다. 같은 기간 질병으로 이곳을 찾은 선수도 249명이다. 2010년 밴쿠버 올림픽 당시도 참가 선수의 약 11%가 부상을 당했다.

강릉=김배중 wanted@donga.com·평창=이헌재 기자
#평창 겨울올림픽#선수촌 내 의료서비스#폴리클리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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