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평창이다]“IOC가 원하는 빙판 만들기, 숨이 막힙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2월 22일 03시 00분


코멘트

함이호 빙상경기장 운영팀장

함이호 평창동계올림픽조직위원회 빙상경기장 운영팀장(오른쪽)이 19일 강원 강릉시 강릉하키센터 보조경기장의 정빙기 옆에서 파이팅을 외치며 평창 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를 자신하고있다. 강릉=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함이호 평창동계올림픽조직위원회 빙상경기장 운영팀장(오른쪽)이 19일 강원 강릉시 강릉하키센터 보조경기장의 정빙기 옆에서 파이팅을 외치며 평창 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를 자신하고있다. 강릉=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밤잠을 설친 게 분명했다. 목소리는 갈라졌고, 피부는 푸석푸석했다. 그의 오른쪽 눈은 벌겋게 충혈돼 있었다. “어제 혼자 있을 때 ‘찔끔’ 울었어요. 성질이 못돼서 그래요. 잘하고 싶은데 뜻대로 안되니….(웃음)”

19일 강원 강릉하키센터에서 만난 함이호 평창동계올림픽 및 패럴림픽 조직위원회 경기장운영부 빙상경기장 운영팀장(61)을 보고 떠올린 단어는 ‘독종’이었다. 첫인상은 서글서글한 편이지만 몇 마디를 섞으면 그가 얼마나 일에 몰입해 있는지를 알 수 있었다.

“원칙을 잘 따집니다. 저를 포함한 90여 명의 빙상운영팀은 기계를 만지는 사람들이에요. 기계는 미리 설계된 원칙에 따라서 움직여야 하죠. 그러니 ‘숨 막힌다’는 소리를 듣더라도 한 치도 어긋남 없이 작업이 진행되도록 팀원들에게 주문합니다.”

함이호 팀장이 직접 써보내준 각오 메시지.
함이호 팀장이 직접 써보내준 각오 메시지.
그의 활동 무대는 빙상 종목이 열릴 강릉 코스탈 클러스터 일대. 이곳 빙상장 대부분은 현재 얼음이 없는 맨바닥(콘크리트)이거나, 얼음이 있어도 곧 해빙 작업을 거치게 될 예정이다. 올림픽을 치르기 전에 마지막으로 빙상장의 바닥인 콘크리트가 균일한지를 살피고, 이곳에 올림픽에 걸맞은 얼음을 다시 얼리기 위해서다.

함 팀장은 지금 ‘얼음 만드는 환경’을 조성하는 데 온 힘을 쏟고 있다. 빙상장 바닥에 깔린 냉각 배관에 영하 19도까지 떨어뜨린 냉매를 순환시켜 언제라도 물을 뿌리면 얼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것이다. 내년 1월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이곳에 파견할 아이스메이커는 이 조건 아래 물을 뿌려 두께 4cm의 경기장(FOP)을 조성한다.

“그 외 경기장의 습도와 선수들의 경기력에 영향을 미치는 빙면으로부터 1.5m 높이의 온도, 관람석 냉난방까지 우리(빙상운영팀)가 관리하고 있어요.”

경기장의 얼음 얼리는 작업은 △당일의 기온 △관람객 수 △문의 개폐율 등 수많은 변수를 가지고 퍼즐 맞추기를 하는 것과 같다. 이를 통해 맞춰지는 1차 완성물인 빙면의 온도는 종목별로 차이가 난다. 역동적인 동작이 많은 피겨스케이팅은 영하 4도, 빠른 속도가 관건인 쇼트트랙은 영하 7도, 스톤의 세밀한 움직임 조절이 핵심인 컬링은 영하 5도 등이다. 여기에 습도와 관람석의 온도 등 2차 완성물도 종목별로 미세하게 달라진다.

함 팀장은 이런 이유로 올림픽 때의 난제로 피겨와 쇼트트랙 경기가 한곳에서 열리는 경기장인 강릉아이스아레나를 꼽는다. 이곳에서 피겨가 끝난 뒤 쇼트트랙 경기가 시작되기까지 3시간이 주어진다. 그 사이 피겨용 얼음을 쇼트트랙용으로 바꾸고, 경기장 내부 조건도 달리해야 한다.

실제 함 팀장은 올해 2월 평창 올림픽에 대비한 테스트이벤트에서 고초를 겪었다. 피겨와 쇼트트랙 경기가 열리던 당시 강릉의 기온은 영상 10도를 웃돌았다. 바깥의 찬 공기를 끌어들일 수 없어 빙상장 내부 온도를 떨어뜨리기가 매우 어려웠다. 여기에 피겨가 끝난 뒤 수많은 관중이 물결치듯 빠져나가고 들어오기를 반복했다. 이 악조건 속에서 함 팀장은 쇼트트랙 경기가 시작되기 딱 몇 분 전에야 IOC가 요구하는 경기장의 조건을 맞추는 데 성공했다.

“제가 긴장하면 머리를 쥐어뜯는데 당시 3시간 동안 그러다 보니 대머리가 되는 줄 알았어요. 이후 몇 번의 테스트를 거치면서 이젠 경기장 환경을 바꾸는 데 필요한 시간을 두 시간으로 단축했습니다.”

2010년 고용노동부가 선정하는 ‘명장(열관리 직종)’으로 지정된 함 팀장은 얼음 만드는 직업에 대한 자부심이 남다르다. 강릉시 공무원으로 일하다가 1999년 강원 겨울아시아경기가 열린 강릉실내빙상장을 관리하면서부터 이 일과 인연을 맺은 지 18년째다. 지난해 8월 조직위에 들어온 뒤부터는 자신의 노하우를 국내에 전파시키겠다는 각오를 세웠다.

“제가 가진 노하우를 토대로 매뉴얼을 만들고 이를 전파할 거예요. 아직 우리 같은 기술자는 소외돼 있습니다. 그래서 잘하고 싶습니다. 최고의 빙상장을 만들 겁니다.”
 
강릉=김재형 기자 monami@donga.com
#빙판 만들기#함이호 빙상경기장 운영팀장#얼음 만드는 환경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