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下山’ 신치용 단장, “한국배구 원하면 대표팀감독 생각 있다”

  • 스포츠동아
  • 입력 2017년 12월 22일 05시 30분


삼성화재 신치용 단장은 퇴임이 정해지자 스스로 선수단과의 접촉을 차단하는 고립을 택했다. 결벽에 가까운 절제는 신 단장이 정상에서 스스로를 지킨 방패였다.  스포츠동아DB
삼성화재 신치용 단장은 퇴임이 정해지자 스스로 선수단과의 접촉을 차단하는 고립을 택했다. 결벽에 가까운 절제는 신 단장이 정상에서 스스로를 지킨 방패였다. 스포츠동아DB
신치용 단장(62)은 삼성화재와 인연을 시작한지 23년 만에 처음으로 ‘일탈’을 했다. 삼성화재는 20일 OK저축은행과 경기를 했는데 생중계를 안 본 것이다. 그 시간 신 단장은 지인과 저녁식사를 했다. 집에 들어와서 재방송으로 경기를 봤다. “삼성화재 경기를 TV로 본 적이 없었으니 어색했다. 경기를 보니, 얘기해주고 싶은 점들이 보였는데 안하는 게 맞는 듯싶다.”

신 단장은 삼성화재 단장직에서 전격 퇴진했다.(스포츠동아 12월18일자 단독보도) 올해 말까지 단장직이 유지되지만 이미 사무실 짐을 정리하고 있다. 단장직을 내려놓은 뒤, 신 단장은 결심 한 가지를 했다. ‘잠시 배구를 잊자’는 것이었다. 그런 마음에 일부러 생중계 시간에 약속도 잡고, 짐 정리로 용인 STC(삼성트레이닝센터)에 머무를 때도 선수단을 피해 다닌다. 신진식 감독이 “식사라도 하시자”해도 “내가 짐을 다 뺀 뒤 하자”라고 미뤄뒀다. 아직 선수들과 작별인사도 나누지 않았다. 단장 신분으로 신 감독에게 남긴 마지막 당부는 이랬다. “백업이 없으니 선수관리 잘해라. 아무도 믿지 말고 기본과 원칙만 믿어라.”

퇴임이 확정된 후 신 단장은 웃음이 늘었다. 그러나 솜 속의 바늘은 여전했다. “요새 아이들은 팀을 위해 다 버리는 마음이 없는 것 같다. 시대가 변하니 할 수 없지만….(웃음)”

신 단장은 ‘피곤한 감독’이었다. “아내가 그러더라. ‘당신은 배구, 팀, 훈련밖에 모르니 구단주는 좋아하겠지만 선수들한테는 힘들 감독이라고.’ 그래서 내가 그랬다. ‘선수들 고생시켜도 성적 내서 연봉 올려주고 보너스 받게 해주면 되지. 지금 삼성화재 출신 감독이 왜 많겠나?’라고.”

우승을 수없이 한 명장이었음에도 신 단장은 배구감독을 특별하다고 여기지 않는다. “배구지도법은 성의만 있다면, 큰 차이 없다. 배구에 관해서도 감독이 선수보다 얼마나 더 알겠나?” 이런 냉철한 현실인식 위에서 신 단장은 감독의 역할을 규정했다. “사람은 스스로 하면 (자기랑 타협하니까) 90%밖에 안 움직인다. 일등을 하려면 120%까지 해야 한다. 그래서 절제, 규율, 헌신의 가치를 전달할 감독, 코치가 필요한 것이다.”

결국 팀 문화를 만드는 것이 감독의 본질적 책무다. ‘신치용 방식’은 이 시대에도 유효할까. 신 단장은 “요즘 아이들의 가치관을 바꿔나가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시대가 바뀌었어도 ‘설득하고 보듬고 이해시키면 따라 오는구나’ 이런 것이 보일 때도 있다”고 말했다.

과거 월드리그와 아시안게임 대표팀 감독을 맡기도 한 신치용 전 감독. 사진제공|대한배구협회
과거 월드리그와 아시안게임 대표팀 감독을 맡기도 한 신치용 전 감독. 사진제공|대한배구협회

삼성화재 단장직에서 내려왔어도 신 단장의 배구인생이 마침표는 아닐 것이다. 지도자 신치용은 남자배구대표팀을 올림픽(2000년 시드니올림픽)으로 이끈 마지막 감독이었다. 대표팀 감독, 코치 경력도 가장 길다. 대표팀은 2018년 자카르타아시안게임과 2020년 도쿄올림픽까지 이끌 전임감독을 곧 찾을 예정이다. 신 단장의 현장복귀 가능성이 배구계에서 떠오르고 있다. 이에 관해 신 단장은 “대표팀 감독 하려는 분들이 꽤 있더라”고 웃음으로 대신했다. “아시안게임은 모르겠고, 도쿄올림픽은 기회가 오면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가능성을 열어뒀다.

꼭 국가대표팀이 아니더라도 신 단장은 한국배구가 원하는 곳이라면 마다하지 않을 눈치였다. 신 단장은 “시간이 지나보면 알지 않겠나”라고 웃으며 답했다.

분명한 것은 잠시 쉼표를 찍고 쉴 계획이다. 옛말에 ‘정승집 개가 죽으면 문상을 와도, 정승이 죽으면 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신 단장도 이런 세상인심을 실감한다. “전화해주는 사람, 밥 먹자고 해주는 사람이 고맙더라. 제자들한테 전화도 온다. 팀이 어려운 제자들이 ‘조언 좀 해 달라’고 청한다”고 웃었다.

산(山)은 올라갈 때보다 하산할 때, 더 위험하다고 말한다. 이미 정상을 찍은 배구인 신치용의 끝내기는 어떻게 장식될까.

김영준 기자 gatzby@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