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김종부 감독 “감독 첫 출근날…풀 죽은 선수들 보고 어찌나 마음이 아프던지”

  • 스포츠동아
  • 입력 2017년 10월 27일 05시 45분


먹고살기 위해 장어집을 운영했던 김종부 감독(가운데)은 어엿한 프로축구단의 수장으로 변신해 경남FC를 환골탈태 시켰다. 어려움과 
실망이 가득했던 팀을 맡아 부침도 겪었지만 결국 클래식(1부리그) 승격이라는 엄청난 결과를 만들어내며 탁월한 지도력을 
과시했다. 사진제공 | 한국프로축구연맹
먹고살기 위해 장어집을 운영했던 김종부 감독(가운데)은 어엿한 프로축구단의 수장으로 변신해 경남FC를 환골탈태 시켰다. 어려움과 실망이 가득했던 팀을 맡아 부침도 겪었지만 결국 클래식(1부리그) 승격이라는 엄청난 결과를 만들어내며 탁월한 지도력을 과시했다. 사진제공 | 한국프로축구연맹
연봉 대폭 깎이고 물갈이 당하고
그야말로 애처로웠던 선수단
첫 시즌은 동기부여에 올인했죠

달라진 선수들과 말컹의 발견
클래식 승격, 장어의 꿈 이뤘다고요?
기쁨도 하루 뿐, 벌써 생존 고민
생계 위해 장어 굽던 그 시절처럼…


도민구단 경남FC는 ‘KEB하나은행 K리그 챌린지(2부리그) 2017’에서 일찌감치 정상에 올랐다. 창단 첫 우승의 기쁨도 컸지만 클래식(1부리그)에 3년 만에 복귀해 최고의 팀과 다시 경쟁하게 됐다는 사실은 더욱 의미가 크다. 부임 2년차 김종부(52) 감독이 경남을 춤추게 했다. 몇 년 전만 해도 먹고살기 위해 장어집을 열고 매운 연기를 마셔가며 눈물겹게 장어를 굽던 장어집 사장에게 찾아온 놀라운 인생 대반전 스토리다. 경남 함안에 있는 클럽하우스에서 만난 김 감독의 입을 빌어 기적과 같은 2017시즌을 되돌아봤다.

● 걸음마

아마추어에 오래 있었어요. 거제고∼동의대∼화성FC 등을 거쳤죠. 프로 지도자는 경남이 처음이었어요. 의욕? 자신? 솔직히 부담만 한 가득이었죠. 처음 이곳(경남)에 왔을 때는 막막합디다. 나도 양복차림과 숨이 턱턱 막히는 넥타이가 불편한 초짜였지만 우리 팀은 더했죠. 이해는 됐죠. 바닥을 쳤잖아요. 실업 수준으로 연봉을 줄이고, 고액연봉자들을 물갈이하면서 팀 사기가 말이 아니었어요. 딱 봐도 ‘어렵겠다’ 싶었죠.

단체 스포츠는 팀 정신이 가장 중요한데, 경남은 선수들부터 이기겠다는 의욕을 회복할 필요가 있었답니다. 애처로울 정도로 축 가라앉아있는데 어떤 것부터 손을 대야할지 모르겠더라고요. 언젠가 프로팀을 이끌겠다는 로망을 마음에 품었는데, 경남은 심각했어요. 후회한 건 아니었는데 감독인 나부터 혼란이 찾아온 거죠. 동기부여를 하고 의욕을 키워주는 데 첫 시즌을 보냈네요. 경기력이나 조직력을 다지는 건 다음 문제였죠. 그렇게 하나하나 채워나갔어요.

사진제공|경남FC
사진제공|경남FC

● 기적

최대한 디테일하게 선수들을 이해시키려 했어요. 강팀을 만났을 때, 약한 상대와 겨룰 때 어떻게 해야 하는 지 공유했죠. 우린 경기력 자체보다는 팀으로 승부해야 하잖아요. 또 투지도 빼놓을 수 없죠. 남들이 열 걸음을 달리면 우린 열두 걸음을 뛰는 것. 말이 쉽지, 체력이 갖춰지지 않으면 불가능한 겁니다. 먼저 생각하고 판단하라는 주문도 많이 했어요. 효율적인 플레이를 하자는 얘기죠. 질 경기 비기고, 비길 경기 이기고, 뒤지고 있다가 역전하고. 일단 자신감이 쌓이고 얼마간 궤도에 오르니까 선수들이 내려오길 싫어하더라고요. 끈질기게 경쟁자들이 추격해올 때도 선수들이 스스로 주문을 걸더라고요. ‘우린 틀림없이 이긴다!’

뚜렷한 목표를 갖도록 했어요. 아마추어 선수는 지도자가 주입하면 되는데, 프로는 선수 자신이 직접 깨우쳐야 하죠. 부담도 주지 않으려 했어요. 어떠한 상황에서든 휴식을 철저히 보장했죠.

대신 훈련은 철저했어요. 빌드-업 방법부터 우리만의 컬러를 만들려 했죠. 단조롭지만 확실한 패턴, 측면 크로스→문전 앞 슛을 주요 루트로 삼았죠. 간결하고 혼란스럽지 않은 플레이가 성공한 거죠.

경남FC 말컹. 사진제공|한국프로축구연맹
경남FC 말컹. 사진제공|한국프로축구연맹

● 말컹

가장 운이 좋았던 것이 말컹의 발견입니다. 아이러니한데 우리 선수층이 얇고, 예산이 부족하다보니 (몸값이 낮은) 말컹을 찾아낼 수 있었어요. 우리 말고도 여러 팀들이 말컹을 알고 있었다는데, 결론적으로 우리가 먼저 데려올 수 있었죠. 다른 팀들이 더 좋은 선수들을 찾는 틈을 이용해서요.

여름이적시장에서 여기저기 빅 클럽들로부터 오퍼가 많이 와 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남아줬잖아요. 솔직히 키우는 재미도 쏠쏠했죠. 농구 선수로 뛰다 축구한지 6년여 밖에 되지 않아서인지 스펀지처럼 모든 걸 빨아들이더라고요. 물론 힘들기도 했을 겁니다. 낯선 문화에 적응하고, K리그를 좀 알게 된 전반기 막판부터 집중적인 상대의 견제가 들어오고 크고 작은 부상을 당했어요. 당연히 우리 입장에선 좋을 수 없었어요. 전방의 고립현상이 심해지면서 화력도 뚝 떨어졌는데 다행히도 말컹 스스로 잘 이겨내더라고요.

득점왕 아무나 하나요? 과거 아드리아노(대전 시티즌)와 조나탄(대구FC·현 수원삼성)도 대단했는데, 출전 경기수가 상대적으로 많이 적었던 말컹의 집중력은 더 칭찬하고 싶네요.

● 장어

이 이야기가 왜 안 나오나 했어요. 진심으로 먹고 살기 위해 2013년 11월쯤 수원에 작은 식당을 차렸어요. 바다 장어구이 전문점. 아마추어 팀 감독봉급 아시잖아요. 말 그대로 눈물 젖은 장어였어요. 그래도 뭔가 특징을 주려고 소스를 직접 만들었는데, 제가 생각해도 기가 막혀요. 대단한 레시피도 없는 데 어떻게 그런 맛이 나오는지 몰라요.

음식점을 운영하면서 가장 미운 손님이 있었어요. 장어 가시를 전부 빼달라는 분. 그러면 직접 핀셋을 들고 하나하나 뽑는데 상상이 되세요? 그 많은 장어 가시를…. 되묻고 싶었어요. ‘갈치는 어떻게 요리해 드시냐’고.

1년쯤 직접 운영하며 장어손질과 굽는 데 익숙해질 즈음 경남의 콜이 왔죠. 지금은 누님과 매형이 운영하는데, 시즌이 끝나면 식당에 가서 장어를 구워야죠. 휴식기도 알차게 보내야죠. 자랑은 아닌데 저희가게 장어는 직접 통영에서 공수해온 겁니다. 싱싱한 자연산이라고요. 또 하나 장어구이 말고 누님이 손수 만드는 멍게비빔밥에 장어탕도 꼭 드셔야 합니다. 별미 중의 별미니까.

사진제공|경남FC
사진제공|경남FC

● 클래식

사실상 새 팀을 꾸려야 할 겁니다. 승격이 확정 되고나니 딱 하루 좋더라고요. 다음날 눈을 떠보니 다시 현실이 기다렸어요. 어디에서 또 말컹을 찾아낼까. 어디서 괜찮은 고참을 찾을까. 임대 선수들도 돌아가야 하는데. 어휴, 걱정이 앞서네요. 물론 생존해야죠. 첫 해가 가장 중요합니다. 살아남아야 내일을 기대할 수 있잖아요. 팀 컬러는 바뀌진 않을 겁니다. 많이 뛰고 봐야 해요. 믿을 구석은 피지컬인데. 검증된 선수들을 툭툭 데려오고, 여기에 맞는 전술과 전략을 마련하는 데 전념하면 더 없이 좋겠지만 구단 사정을 생각해야 하잖아요. 체력훈련, 각오해야죠. 동남아시아처럼 따스한 지역에서 부상 없이 체력을 키운 뒤 돌아와 실전감각을 조금씩 끌어올리는 2차 작업으로 새 시즌을 대비할 참이죠.

그래도 자신감이라는 소중한 자산을 얻었어요. 경쟁을 극복하고 리그를 우승한 선수들이 느낀 짜릿함은 앞으로도 큰 도움이 될 겁니다. 저 역시 그래요. “프로 감독의 계약기간은 무의미하다”는 전북 최강희 감독님의 말씀에 절대 동의해요. 다만 어렵게 기회를 얻었는데 금세 목이 달아나면 억울하잖아요. 이제야 털어놓지만 굉장히 힘들었어요. 스트레스는 풀리지 않고 감기는 달고 살고. 연패했을 때는 온 몸이 쑤시고 담이 오고, 몸살까지 오는데 죽다 살아난 적도 많아요. 우리들의 숙명이겠지만 내년에도 웃는 시간이 많았으면 해요. 그럴 수 있겠죠?

함안 |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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