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스피드업 역행하는 KOVO의 비디오판독 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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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년 9월 21일 05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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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는 채널의 시대였다. 채널 돌리기 귀찮아서라도 보던 콘텐츠를 그냥 봤다. 그러나 지금은 리모컨의 시대 혹은 클릭의 세상이다. 조금만 지루하다 싶으면, 손가락 한 번 까딱 해버리는 것으로 다른 재미를 찾아간다.

이런 환경에서 스피드 업은 프로스포츠의 생존과 직결된다. 어떻게든 경기시간을 줄여 관중과 시청자의 몰입을 유지하려고 필사적이다. 그런데 이런 시대정신과 역행하는 곳이 있다. KOVO(한국배구연맹)와 V리그 구단들이다.

19일까지 ‘2017 천안·넵스컵 프로배구대회(이하 KOVO컵)’ 13경기 중 2시간을 넘긴 경기만 5개에 달한다. 여자부 GS칼텍스는 14일 도로공사전을 2시간3분 동안 하더니 18일 IBK기업은행전은 무려 2시간22분을 끌고 갔다. 남자부 삼성화재도 13일 대한항공전 2시간14분, 19일 한국전력전을 2시간13분을 소진했다.

아직 전력이 궤도에 오르지 않은 KOVO컵부터 이렇게 풀 세트 접전(총 6경기)이 비일비재한 것은 그만큼 전력평준화가 잘 되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그러나 V리그 개막을 앞둔 시점에서, 이런 상황이 내포하는 시그널을 대하는 KOVO와 일부 구단들의 무심함은 딴 세상 사람들 같다.

KOVO와 구단들은 KOVO컵에서 비디오판독 횟수를 대폭 늘리는데 합의했다. 지난 시즌 5세트 스페셜 판독을 포함해 팀별 최대 5회로 제한했던 판독 신청기회를 이번에는 ‘세트 당 1회, 오심이나 판독불가 시 추가 1회 발생’으로 바꿨다. 즉 팀당 최대 10번을 할 수 있게 된 셈이다. 합치면 20번이다. 판독 시간에 평균 2분 안팎이 소요되는 것을 고려하면 대략 40분 이상이 판독에 소비될 판이다. 가뜩이나 2시간 넘는 경기가 속출할 상황에서 판독 시간마저 이렇게 대폭 확대되면 어지간한 야구경기 시간에 필적할 판이다.

게다가 비디오판독은 경기의 흐름을 끊는다는 치명적 폐해도 안고 있다. 이 마당에 KOVO와 구단 들은 동일 랠리에서 비디오판독을 팀이 서로 할 수 있는 ‘추가판독’까지 허용해 놨다. 쉽게 말해 한 팀이 블로킹 터치아웃으로 판독을 걸어서 오심을 따내면, 상대 팀이 스파이크 인-아웃으로 판독을 신청해 다시 엎을 수 있도록 해놓은 것이다. 판독이 감독끼리의 신경전 도구로 변질되기 딱 좋은 환경이다.

배구의 인기가 올라가서 주목도가 높아질수록 현장 감독들마저 더욱 승패에 함몰된 형국이다. ‘일단 이기고 봐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힌 나머지 배구경기가 늘어지고, 끊어지는 것은 눈감아버린 셈이다.

KOVO와 구단들은 ‘왜 배구를 하는가’라는 근원적 고민을 성찰할 때다. 오직 이기는데 급급해 팬을 망각한다면, V리그의 오만함은 심판 받을 것이다. 10월 14일 V리그 개막까지 바로잡을 시간은 남아 있다.

천안 | 김영준 기자 gatzb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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