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이승건]KBL의 ‘숙소 폐지’ 실험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2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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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건 스포츠부 차장
이승건 스포츠부 차장
 한국농구연맹(KBL)은 최근 10개 구단 사무국장과 만나 숙소 폐지에 대해 논의했다. 숙소를 없애자는 이사회 동의를 바탕으로 약 2개월 전에 꾸려진 태스크포스팀의 활동이었다. 세 차례의 만남을 통해 두 가지 안이 나왔다. 하나는 다음 시즌부터 바로 적용하는 것, 다른 하나는 1년쯤 유예기간을 두자는 것이다. 언제가 됐든 폐지는 확정됐숙다.

 출범 20년을 맞은 프로농구가 숙소 폐지를 추진하는 가장 큰 이유는 ‘프로다운 운영’에 있다. 이성훈 KBL 사무총장은 “선수들도 일반 직장인처럼 훈련과 경기 일정에 맞춰 출근하고 퇴근 후에는 개인 생활을 보장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이유는 ‘연고지 정착’이다. 프로농구 10개 구단 모두 연고지가 있지만 지방 구단의 경우 그 지역에 거주하는 선수가 없다. 울산 모비스와 전주 KCC는 용인, 부산 kt는 수원, 창원 LG는 이천 등 수도권에 숙소가 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먹고, 자고, 훈련하고 경기가 있을 때만 연고지에 간다. 숙소를 없애면 선수들이 연고지로 이사할 수밖에 없고, 지역 주민과 함께 살면서 진정한 의미의 연고 구단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프로 선수들의 합숙이 농구만의 일은 아니다. 축구, 배구 선수들도 숙소 생활을 한다. 안방경기 때 개별 출퇴근을 하는 종목은 프로야구뿐이다. 프로야구도 2군 선수들은 합숙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그만큼 국내 스포츠에서 단체생활은 뿌리 깊고 보편적이었다.

 명분만 보면 KBL의 숙소 폐지는 바람직한 방향으로 보인다. 하지만 일선 지도자들 사이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한 프로농구 감독은 “KBL이 미국프로농구(NBA)를 모델 삼아 숙소 폐지를 추진한다고 들었다. 그러나 어릴 때부터 자율적으로 운동을 해 온 외국 선수들과 엘리트 선수로 커 온 국내 선수들은 다르다. 생활이 흐트러지고 훈련 시간도 지금보다 줄어들어 리그 수준이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한 프로배구 지도자는 “숙소 생활을 하면서도 몰래 클럽에 드나드는 선수들이 꽤 있다. 이런 선수들이 매일 ‘퇴근’을 하면 남은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 안 봐도 뻔하다. 또한 지방 구단이라면 미혼 선수들은 혼자 살아야 한다. 라면으로 대충 때우고 운동하는 선수들이 속출할 것이다. 연봉이 낮은 선수들은 주거비용으로 번 돈의 절반 이상을 지출해야 하는 문제도 생긴다. 배구에서도 숙소 폐지 얘기가 나왔지만 흐지부지된 이유”라고 전했다. 이런 우려에 대해 이 총장은 “시대가 변하고 있다. 과거와 달리 과음을 하거나 담배를 피우는 선수들이 크게 줄고 있다. 스스로 관리해야 생존할 수 있는 게 프로”라고 강조했다.

 숙소 폐지 이후 부정적인 면이 두드러지면 ‘KBL만의 실험’에 그칠 것이다. 반면 긍정적인 측면이 부각되면 다른 종목들도 이를 따라 하고, 궁극적으로 한국 스포츠의 풍토를 바꾸는 계기가 될 것이다. ‘KBL 숙소 폐지’의 연착륙 여부에 스포츠계가 관심을 가져야 할 이유다.
 
이승건 스포츠부 차장 why@donga.com
#한국농구연맹#태스크포스팀#kbl 숙소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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