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치, 그들을 말한다] (4) 목표 위해 2군보직도 불사한 두산 이강철 코치

  • 스포츠동아
  • 입력 2016년 12월 14일 05시 30분


이강철 두산 투수코치는 현역시절 152승 53세이브 방어율 3.29를 기록한 레전드다. 해태왕조의 주역이었고 지도자로 변신해 KIA의 우승, 넥센의 중흥을 이끌었다. 2016시즌을 끝으로 두산으로 옮겨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다. 이 코치는 4일 잠실구장에서 두산 우승기념 행사에 참석해 팬들에게 첫 인사를 했다. 사진제공 | 두산베어스
이강철 두산 투수코치는 현역시절 152승 53세이브 방어율 3.29를 기록한 레전드다. 해태왕조의 주역이었고 지도자로 변신해 KIA의 우승, 넥센의 중흥을 이끌었다. 2016시즌을 끝으로 두산으로 옮겨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다. 이 코치는 4일 잠실구장에서 두산 우승기념 행사에 참석해 팬들에게 첫 인사를 했다. 사진제공 | 두산베어스
현역시절 그를 능가하는 잠수함 투수는 없었다. 등장부터 퇴장까지 기록의 향연이었다. 데뷔 첫해 15승은 시작에 불과했다. 이후 4년 연속 15승과 10년 연속 10승, 10년 연속 100탈삼진과 같은 대기록이 줄을 이었다. 그러나 그는 “아쉽다”고 했다. 더 욕심을 내지 못해 최고의 경지에 오르지 못한 점은 “두고두고 후회로 남는다”고도 했다. 현역시절 아쉬움을 뒤로 하고 이젠 코치다. 올겨울엔 큰 결심도 했다. 1군 수석코치라는 직함을 뒤로하고 2군 보직 수용까지 불사한 것이다. 넥센을 떠나 두산에 새 둥지를 튼 이강철(50) 신임코치의 이야기다.

● 이별과 만남이 교차하는 2016년 겨울

1일 두산행이 결정되고 겨우 열흘 남짓이 흐른 탓일까. 아직 새 팀에 왔다는 것이 실감나지 않는다. 명확한 보직도 주어지지 않았고, 선수단과 제대로 이야기를 나눌 겨를도 없었다. 4일 잠실에서 열린 구단 연말행사(팬페스트)에서의 짧은 만남이 전부였다. 그래서인지 “아직은 소속팀이 없는 느낌”이라는 농담도 툭 내뱉었다. 그러나 설레는 마음을 숨길 수는 없다. 새로 함께 할 선수들을 보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다. 팀을 옮기며 오랜만에 맛보는 휴가도 좋지만, 코치로서 제몫을 해내는 일도 서두르고 싶다.

물론 마음이 편치만은 않다. 넥센에 두고 온 제자들이 눈에 밟히기 때문이다. 서로 마음이 맞는 선수들도 많았고, 더 지도해주고 싶은 제자들도 수두룩했다. 이별 역시 쉽지 않았다. “가슴에 남는 선수 하나를 꼽기는 어렵다. 그저 모두에게 고맙다”며 속내를 내비쳤다. 팀을 떠나며 선수들에게 일일이 연락하기가 어렵다는 생각에 팀 매니저를 통해 문자를 남겼다. 쑥스럽지만 이것이 도리라고 생각했다. 구체적인 내용을 밝히지는 않았다. “매니저에게 그저 내 마음을 대신해달라는 말만 남겼다”고 전했다. 사령탑이 바뀌며 팀에 남을 수 없는 입장이었지만, 제자들을 향한 마음만은 그대로 전해졌다.

● “실은 2군 보직 이야기를 듣고 왔다”

넥센을 나온 뒤 두산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함께 하고 싶다”는 김태형 감독의 의중을 전해 들었다. 한살 어린 김 감독과는 인연이 깊지 않다. 1988서울올림픽(당시 시범종목)을 함께한 정도다. 인연을 떠나 이번 기회를 새로운 도약으로 삼고자 두산행을 결심했다.

궁금증을 낳은 보직에 대해서 묻자 예상을 깬 대답이 나왔다. “실은 2군 쪽 보직을 맡기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물론 최종보직은 구단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1군 수석코치가 2군 보직을 받아들이기까지 고민은 깊었다. 새 얼굴들을 길러낼 수 있겠다는 생각이 결국 마음을 움직였다.

스프링캠프가 열리면 산적한 과제부터 해결해야 한다. 불펜진 보강과 5선발 찾기가 그를 기다리고 있다. 필승조 정재훈과 이용찬이 수술대에 올라 전반기 복귀가 불투명하다. 여기에 우완불펜 윤명준과 5선발 허준혁은 나란히 상무에 입대했다. 이 코치는“우선 투수들을 직접 만나 선발과 중간 보직을 명확히 나눌 예정이다. 이어 해당보직에 맞게끔 몸을 만들게 해 1군에 필요한 자원을 키우겠다”고 설명했다. 여기엔 본인의 숱한 경험이 뒷받침된다. 현역시절 선발과 불펜, 마무리를 오가며 활약한 만큼 노하우를 최대한 살릴 계획이다. 다만 한 가지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있다. 트레이닝 파트다. 과거에는 투수가 하체 강화에만 몰두했지만, 이젠 선수 특성에 따라 보강이 필요한 부위에 집중해야 할 때다. 무작정 뛰기만 하던 시절은 이제 지나갔다.

● “선수로는 2인자였지만 코치로는 1인자 꿈꾼다”

지금에서야 되돌아보는 현역시절은 아쉬움이 가득하다. 남들이 부러워할만할 대기록을 쏟아냈음에도 최고의 경지에 오르지 못한 사실이 마음에 걸린다. “요즘 말로 마지막 멘탈이 약했다. 이 정도면 됐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더 높은 곳까지 오를 수 있었는데 그러지 못했다.” 그의 설명대로 프로 생활 17년간 개인 타이틀은 삼진왕(1992년)과 한국시리즈 MVP(1996년), 단 두 번뿐이다. ‘2인자’라는 달갑지 않은 수식어도 따라붙었다. 해태에선 선동열이라는 거대한 장벽이 ‘에이스’란 칭호를 허락하지 않았다. 팀 밖에선 송진우라는 동갑내기 경쟁자가 그의 타이틀을 여럿 빼앗았다. 1999년 영예의 ‘1호 FA’조차 이강철(11월29일)보다 정확히 3일 앞선 송진우의 차지였다.

그러나 코치 이강철은 달라졌다. 현역시절 경험이 뼈가 되고 살이 됐다. 투수파트에 있어선 최고가 되고 싶다는 마음하나로 지금까지 달려왔고, 앞으로도 뛰어갈 생각이다. 물론 시행착오도 있었다. 은퇴 이후 코치로 발걸음을 처음 내디뎠을 땐 의욕이 앞섰다. 내가 먼저 선수들에게 다가가 이것저것 알려주느라 바빴다. 시간이 흐르자 이 방법이 정답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 혼자해서는 되지 않더라. 결국엔 같이 만들어가는 것이 야구였다.” 이제는 선수들이 먼저 다가오게 만들려고 한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선수들의 적극적인 구애를 받아들이는 스타일로 코치 이강철이 완성돼갔다. 이제 지도자로서 세 번째 팀에 발을 디뎠다. 2군 보직마저 받아들였으니, 목표는 하나다. 최고의 선수들을 길러내 으뜸가는 지도자가 되는 일이다.

● 두산 이강철 코치

▲생년월일=1966년 5월 24일
▲출신교=서림초~무등중~광주일고~동국대
▲프로경력=해태(1989~1999년)~삼성(2000년)~KIA(2001~2005년)
▲프로 통산성적=602경기 2204.2이닝 152승112패 53세이브 33홀드, 방어율 3.29
▲지도자 경력=KIA 투수코치(2006~2012년)~넥센 수석코치(2013~2016년)~두산 코치(2017년~)
▲수상 경력=삼진왕(1992년), 한국시리즈 MVP(1996년)

고봉준 기자 shutou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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