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장군의 거대한 실험, ‘한국의 쿠퍼스타운’을 현실로

  • 스포츠동아
  • 입력 2016년 10월 20일 05시 30분


부산 기장군 야구타운 관제탑 옥상에서 찍은 ‘현대드림볼파크 메인 야구장’ 전경. 사진기자는 이것을 찍기 위해 사다리를 타고 안전장치 없는 관제탑 옥상에 올라가는 위험을 무릅썼다. 없는 사다리를 기장군 공무원들은 어딘가에서 구해왔다. 무사안일, 복지부동이라는 공무원에 관한 고정관념이 바뀐 순간이었다. 기장| 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부산 기장군 야구타운 관제탑 옥상에서 찍은 ‘현대드림볼파크 메인 야구장’ 전경. 사진기자는 이것을 찍기 위해 사다리를 타고 안전장치 없는 관제탑 옥상에 올라가는 위험을 무릅썼다. 없는 사다리를 기장군 공무원들은 어딘가에서 구해왔다. 무사안일, 복지부동이라는 공무원에 관한 고정관념이 바뀐 순간이었다. 기장| 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미국 뉴욕주에 ‘쿠퍼스타운’이라는 작은 시골마을이 있다. 뉴욕에서 차를 타고 시골길을 3시간 이상 가야 되는 외딴 곳이다. 딱히 구경거리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해마다 이곳을 찾는 전 세계의 관광객이 끊이지 않는다.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쿠퍼스타운 가는 길은 성지순례와 같다. 왜냐하면 이곳이 ‘야구의 발상지’라고 전해지기 때문이다.

전설은 팩트가 아닌 메시지의 힘으로 구전되는 법이다. 역사학자들의 고증에 따르면, 쿠퍼스타운이 야구의 발상지라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야구의 창조자로 전승되는 에브너 더블데이 장군 역시 ‘실제 야구를 했다’는 증거 자료는 없다. 그러나 실체와 달리 후손들은 ‘쿠퍼스타운에서 야구가 태어났다’고 믿기로 ‘합의’했다.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이라는 상징적 건축물이 이곳에 생겨났다. 이제 쿠퍼스타운은 ‘야구교(敎) 신도’들이 찾는 메카 같은 공간으로 각인된다.

스토리에 시간이 쌓이면 상징성이 만들어진다. 그 상징성이 사람을 흡입하고, 지역 경제효과를 일으킨다. 미국이라는 성공모델이 있는데 한국도 못할 이유가 없다. 후발주자로서 권위를 만드는데 시간이 걸리겠지만 시행착오를 줄이고, 압축성장을 할 잠재력도 있다. 안착만 시키면 이 보다 더 좋을 수 없는 굴뚝 없는 산업이다. 그리고 부산 기장이 이 ‘꿈을 파는 산업’에 착수했다. 그 첫 걸음의 족적이 이미 완성됐는데 바로 ‘기장 야구테마파크’다. 9월 세계여자야구월드컵을 성공리에 치르며 국민 앞에 가능성을 보여줬다. 그리고 약 한 달이 흐른 10월6일, ‘기장 야구타운’을 다시 방문했다.

기장 현대드림볼파크. 기장|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기장 현대드림볼파크. 기장|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 태풍이 지나간 뒤

야구장을 찾았을 때, 하필 태풍 차바가 지나간 직후였다. 오규석 군수 이하 기장 공무원들은 태풍 피해를 살피느라 경황이 없었다. 기장군청에서 간단한 설명을 듣고 야구장으로 향했다. 역대급 10월 태풍을 맞아 부산 지역이 초토화된 상황에서 이제 갓 지은 야구장이 괜찮을지 은근히 걱정됐다. 현장에 가보니 태풍의 위력을 실감할 수 있었다. 관제시설 창유리가 금이 간 채 발견됐다. 메인야구장 덕아웃에 설치한 냉장고가 옆으로 쓰러진 것도 목격했다. 그런데 정작 야구장은 건재했다. 야구장 관련된 어떤 시설도 태풍이 할퀴지 못했다. 그동안 기장 야구타운은 그 규모(5만9450평)로써 대내외에 어필했다. 역설적이게도 태풍이 야구장의 내구성도 입증해줬다.

사실 기장 야구타운은 일부분이다. 기장군 2030팀은 ‘일광유원지 조성계획’이라는 프로젝트 아래 ▲군민체육공원 ▲월드컵빌리지 ▲야구테마파크를 건설 중이다. 1차로 야구장을 4개 먼저 지었을 뿐, 이후 축구장 4개, 종합운동장, 리틀야구장, 소프트볼경기장, 테니스경기장, 풋살경기장, 실내체육관, 골프연습장 등이 추가된다. 완성되면 전국체전을 치르기에 손색없을 ‘종합스포츠콤플렉스’가 된다. 유스호스텔도 지어서 숙박시설까지 갖춘다. 전지훈련장의 기능성을 고려한 설계다. 차를 타고 한 바퀴 도는 데도 15분이 족히 걸리는 스케일이었다. 기장군 관계자는 “최적의 동선을 얻기 위해 추가 비용을 들여 길까지 새로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기장 현대드림볼파크. 기장|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기장 현대드림볼파크. 기장|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 야구가 기장을 먹여 살리는 날이 온다면

2008년 부산은 반짝 호황을 누렸다. 롯데 자이언츠에 구름 관중이 몰린 덕분이다. 당시 한양대스포츠산업마케팅센터는 롯데가 부산경제에 미치는 효과를 1400억원으로 분석했다. 실제 2008년 부산지역 대형 소매점 판매지수는 롯데 승률과 연동해 상승하는 그래프를 보여줬다. 한신 성적에 따라 경제가 호전되는 일본 오사카처럼 한국도 야구가 지역경제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음을 보여준 극적 사례다.

롯데의 성적이 그때처럼 좋진 못하지만 부산, 경남 지역의 잠재적 야구수요는 무궁무진하다. 기장군이 총 340억원(시비 115억, 군비 140억, 현대자동차 85억)이 투입된 ‘야구타운’을 짓기로 결단한 핵심 배경도 ‘야구장이라면 회전율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계산이 선 때문이었다. 야구장 관리 공무원은 “여자야구월드컵 같은 큰 대회가 없을 때에는 야구장을 사회인 야구팀에 빌려줘 수입을 얻는다. 특히 주말에는 수요가 많다. 천연잔디가 깔린 메인구장은 더 비싼데도 여기서 한번 야구를 해보고 싶어 하는 로망이 야구하는 사람들에게 있는 것 같다. 인조잔디가 깔린 보조구장 3개도 꾸준히 임대된다”고 말했다.

기장 야구타운의 빠질 수 없는 화룡점정은 명예의 전당 건립이다. 2011년 9월 KBO가 한국야구 100년·프로야구 30년 기념사업으로 명예의 전당을 공모했는데 2014년 3월 기장 유치가 확정됐다. 기장 관계자는 “유치 확정 이후 부산시와 KBO간 협의가 지지부진했다. 그러나 독립채산제 운영 등 주요 사항에 대해 협의가 완료됐다. 2016년까지 설계 공모가 예정됐고, 2018년 공사 착수 후 2019년 초 준공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기장 야구 명예의 전당은 지상 3층 면적 3000㎡ 규모로 건설된다. 기장 야구타운 내에 부지는 마련됐고, 구체적 콘텐츠는 KBO와의 협의를 통해 완성된다.

명예의 전당과 스포츠타운이 완공되면 기장은 ‘체육+관광’의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여기에 보조를 같이 해 교통과 숙박 인프라를 보완할 예정이다. 사람이 모이는 꿈의 도시 기장으로 도시 브랜드를 구축하겠다는 원대한 포부다. 거대한 판은 만들어졌다. 이제 꿈을 실현할 소프트웨어를 기장군이 운영할 수 있느냐를 지켜볼 차례다. 잘 되면 기장군민들이 쿠퍼스타운처럼 야구를 통해 지속적으로 먹고 살 수 있을 것이다.


● 기장군

인구는 15만7000명. 3읍 2면으로 구성돼 있고, 대한민국 제2도시 부산시 면적의 대략 30%를 차지한다. 산지와 해안이 고루 발달돼 있어 해산물, 농산물이 풍부하다. 특히 기장멸치 기장미역 기장다시마는 지역의 대표적 특산물이다. 볼거리로는 달음산, 일광해수욕장, 장안사 계곡, 소학대, 홍연폭포, 임랑해수욕장, 시랑대, 죽도 등 기장 8경이 유명하다. 또 기장 미역·다시마축제, 멸치축제, 차성문화제, 갯마을마당극축제, 붕장어축제, 철마한우불고기축제 등이 철마다 열린다. 부산시 16개 구·군 가운데 유일한 자치군인 기장군은 정관신도시 조성, 동부산 관광단지개발, 의·과학 복합단지를 발전시켜 치료와 휴양을 겸한 관광개발거점지로서의 도시 성장을 모색하고 있다.

기장(부산) | 김영준 기자 gatzb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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