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스볼 브레이크] 다시 역주행하는 KBO리그 경기시간

  • 스포츠동아
  • 입력 2016년 8월 25일 05시 30분


미국 마이너리그 구장의 백스톱에 설치돼 있는 ‘20초 피치 클락(투구 시계)’. 마이너리그는 주자가 있더라도 투수가 포수에게 공을 건네받은 뒤 20초 이내에 투구를 하지 않으면 볼로 선언된다. 사진출처|마이너리그 베이스볼(MILB.com) 캡처
미국 마이너리그 구장의 백스톱에 설치돼 있는 ‘20초 피치 클락(투구 시계)’. 마이너리그는 주자가 있더라도 투수가 포수에게 공을 건네받은 뒤 20초 이내에 투구를 하지 않으면 볼로 선언된다. 사진출처|마이너리그 베이스볼(MILB.com) 캡처
‘LA 타임스’는 20일(한국시간) 올 시즌 후 메이저리그(MLB) 스피드업 움직임과 관련해 ‘급진적 변화’를 고려하고 있다는 기사를 게재했다. ‘MLB의 시선은 게임의 스피드업을 위해 20초 투구 시계와 함께 다른 방안들로 향하고 있다(MLB eyes 20-second pitch clock and other measures to speed up games)’는 제목의 기사였다. 이에 앞서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도 14일에 비슷한 내용의 기사를 썼다. 2시간대로 줄였던 평균 경기시간이 다시 3시간대로 진입하자 MLB도 다시 스피드업을 화두로 꺼내고 있다. 미국 현지 언론에 따르면 MLB의 롭 맨프레드 커미셔너의 관심은 지금 ‘20초 투구 시계(20-second pitch clock)’에 꽂혀있다. 올 시즌 후 선수노조와 협의를 거쳐 내년부터 도입하려는 의지가 강하다.

그러나 KBO리그에서는 남의 나라 얘기다. KBO도 최근 경기시간 단축을 위해 갖가지 아이디어와 규정들을 도입하고 있지만 올 시즌 평균 경기시간은 23일까지 3시간22분을 기록 중이다. 잠시 단축되는가 했으나 다시 역주행을 하고 있다.

KBO리그는 2014년 역대 최고치인 3시간27분으로 늘어나자 MLB의 스피드업 노력을 참고해 몇 가지 방안들을 마련해 시행했다. 타자의 타석 이탈 금지를 비롯해 투수교체 시간을 2분45초에서 2분30초로 단축하고, 공수교대시간도 2분으로 엄격히 적용하기로 했다. 4사구 시 타자는 뛰어나가 1루를 밟은 다음 보호대를 벗어야하고, 감독 어필시 수석코치가 동행하면 코치가 퇴장당한다는 규정 등을 신설했다.

이런 노력으로 KBO리그는 지난해 평균 경기시간 3시간21분을 기록하게 됐다. 전년보다 6분이나 단축시켰다. 타자가 타석에 들어선 순간부터 최소 한 발은 타석에 두어야한다는 규정을 처음 시행했을 때는 반발도 생겼지만, 이젠 모두가 적응한 상황이다. 결국 습관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올 시즌 다시 경기시간이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보다 1분 증가한 3시간22분을 기록 중이다. 이는 2014년에 이은 역대 2위 기록이다.

올 시즌 팀별 평균 경기시간을 보면 한화가 가장 길다. 연장전을 포함하면 무려 3시간40분이다. 9이닝 정규이닝으로만 따져도 평균 3시간34분이다. 다른 9개구단의 연장전 포함 경기시간보다 더 길다. 평균 경기시간이 가장 짧은 구단은 SK로 3시간18분이며, 넥센이 3시간19분으로 뒤를 잇고 있다.


● 3시간대로 접어들자 다시 불이 난 MLB

MLB는 최근 경기시간에 대해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갖가지 스피드업 방안들을 마련해 2015년 2시간대(2시간56분)로 진입했는데, 올 시즌 초반 다시 3시간대로 늘어나자 비상이 걸렸다. 5월초 ESPN이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3시간24초를 기록했다. 어떻게 보면 자투리 24초 때문에 3시간대로 돌아갔다며 호들갑을 떨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만큼 MLB는 경기시간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최근 젊은이들은 경기시간이 긴 MLB를 즐겨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맨프레드 커미셔너는 경기시간 단축을 위한 갖가지 아이디어를 발표하고 있다. 수비 시프트 제한이나, 투수교체 제한 방안까지 꺼냈다가 현장의 반발에 부딪쳐 일단 보류하고 있지만 마이너리그에서 실험해온 ‘20초 투구 시계’는 내년부터 MLB에도 도입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마치 농구장처럼 커다란 초시계를 백스톱 뒤에 붙여 시간을 알려주는 것이다. 현재는 주자 없을 때 12초 이내에 투구하지 않으면 볼을 선언하는 ‘12초룰’만 적용하고 있지만, 주자가 있을 때에도 투수가 포수에게 공을 건네받은 뒤 20초 이내에 투구를 하지 않으면 볼을 선언하는 페널티를 주겠다는 것이다.

실제로 마이너리그에서 20초 투구 시계를 실험해본 결과 스피드업 효과를 낸 것으로 파악됐다. 더블A인 이스턴리그는 2014년 2시간50분에서 2015년 2시간42분으로 8분 단축됐고, 서든리그는 2시간52분에서 2시간39분으로 13분이나 줄어들었다. 트리플A인 퍼시픽코스트리그는 13분, 인터내셔널리그는 14분이나 단축되는 효과를 봤다.

사진제공|두산 베어스
사진제공|두산 베어스

● KBO리그 경기시간은 줄일 수 없나

만약 MLB가 ‘20초 투구 시계’를 야구장에 설치해 운용한다면 KBO도 이내 따라할 가능성이 크다. 지금의 평균 경기시간은 메이저리그보다 더 심각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KBO 양해영 사무총장은 “KBO리그는 평일 저녁 6시30분에 경기를 시작한다. 직장인들의 퇴근 시간을 고려하면 7시에 시작하는 게 좋지만 지금의 평균 경기시간을 생각하면 엄두를 낼 수 없다. 지금도 경기가 끝나고 팬들이 귀가하면 밤 11시, 12시쯤 되는데 경기 개시시간을 7시로 늦출 수 있겠느냐. 경기시간이 늘어나면 결국 야구장을 찾는 관중수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고민했다.

KBO리그의 평균 경기시간이 늘어나고 있는 데에는 여러 요인이 있다. 가장 큰 이유는 극심한 타고투저다. 그리고 심판합의판정 도입, 불펜의 외야 이동 등으로 인한 투수교체 시간 지연 등도 꼽을 수 있다. 물론 야구를 인위적으로 비틀 수는 없다. 전통론자들은 “야구가 무슨 시간 게임이냐”며 스피드업 방안들에 대해 못마땅해 하기도 한다.

그러나 MLB가 경기시간 단축에 사활을 거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이대로 경기시간이 계속 늘어난다면 미래에 살아남기 힘들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KBO도 야구인들의 인식전환과 제도적 장치 마련으로 스피드업을 위한 노력을 지속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이재국 기자 keyston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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