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현두]올림픽의 성공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5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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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두 스포츠부장
이현두 스포츠부장
한국 남자 아이스하키 대표팀은 지난달 한국 스포츠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수 있는 기적을 만들 뻔했다. 대표팀은 러시아 미국 캐나다 등 세계 아이스하키의 강호 16개 팀만 참가하는 아이스하키의 ‘월드컵’인 월드챔피언십에 사상 최초로 출전할 기회를 반쯤 손에 쥐었었다. 월드챔피언십 출전권이 걸린 아이스하키 세계선수권 디비전1 그룹A(2부 리그)에 출전한 대표팀은 그러나 마지막 경기에서 이탈리아에 한 골 차로 패하며 아깝게 출전권을 놓쳤다. 비록 1부 리그인 월드챔피언십 출전 기회는 날아갔지만 대표팀은 34년 만에 일본을 꺾으며 한국 아이스하키 사상 최고의 성적을 냈다. 그런데도 대표팀은 대회 기간은 물론 귀국할 때도 성적에 걸맞은 관심을 받지 못했다. 국내에서 아이스하키가 비인기 종목인 탓이 가장 컸지만 귀화 선수가 6명이나 포함된 대표팀 구성 때문이기도 했다. 대표팀이 넣은 11골 중 절반이 넘는 6골을 귀화 선수들이 기록했고, 한국의 골문을 지킨 수문장도 귀화 선수였기 때문에 대표팀이 거둔 성적에 어울릴 정도로 국민들의 놀라움은 크지 않았던 것이다. 귀화 선수의 활약을 폄하하거나 귀화 선수를 차별하는 것이 아니라 귀화 선수가 포함된 대표팀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정서가 그렇다는 것이다.

아이스하키는 그래도 나은 편이다. 국민들의 정서를 고려해 귀화 신청이 아예 받아들여지지 않은 선수도 있다. 3월 동아국제마라톤에서 국내 개최 대회 최고기록을 세운 케냐의 마라톤 선수 윌슨 로야나에 에루페는 대한체육회에 의해 국내 귀화가 거부됐다. 에루페는 한국을 위해 달린다는 의미로 오주한(吳走韓)이라는 한국 이름까지 지으며 태극 마크를 달고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 출전하겠다는 의지를 불태웠으나 꿈을 이루지 못했다. 체육회 관계자는 “에루페가 리우 올림픽에서 메달을 딸 가능성이 있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귀화까지 시키며 메달을 따내야 하나라는 의견이 많았다”고 전했다.

올림픽 메달에 목매달았던 1980년대 군사정부 시절이었으면 어땠을까. 올림픽에서 메달을 딸 가능성이 큰 에루페의 귀화를 받아들이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 시절에는 우리뿐 아니라 모든 나라에서 올림픽에 출전시키기 위해 선수를 귀화시키는 경우는 드물었다. 그러나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다. 카타르의 경우 남자핸드볼 대표 선수의 90% 이상은 유럽 국가 출신의 귀화 선수들이다. 육상에서도 아프리카 국가 출신들을 귀화시켜 아시아 육상을 석권하고 있다.

다민족 사회로 변하며 민족 국가라는 의미가 옅어지고, 귀화가 올림픽 출전을 위한 수단이 되면서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체제 대결에 국가 간의 대결까지 어우러지며 모든 국가가 사활을 걸다시피 치렀던 올림픽 시대는 지나갔다. 실제 리우 올림픽 개막까지 석 달도 안 남았지만 예전과 비교하면 올림픽에 대한 열기를 느끼기 어렵다. 리우 올림픽을 100일 앞두고 태릉선수촌에서 열린 주요 선수와 지도자들의 기자회견에서 올림픽에 출전하는 국가대표 선수들에 대한 관심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나올 정도다. 외국도 마찬가지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올림픽은 이제 적자를 피할 수 없는 대회로 굳어지고 있다. 이에 따라 수익성에서만 찾던 올림픽의 성공을 판단하는 잣대도 바꿔야 할 때가 됐다. 평창 겨울올림픽 역시 예외가 아니다. 올림픽을 치른 뒤 느끼는 국민들의 자긍심도 새로운 잣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얻으려면 먼저 모든 국민의 지지와 도움을 얻어야만 한다. 하지만 평창조직위원회는 여전히 특정 지역만 염두에 둔 수익 타령만 하고 있는 것 같다.

이현두 스포츠부장 ruchi@donga.com
#남자 아이스하키#월드챔피언십#귀화 선수#에루페#오주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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