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헌의 사커 드림] 레스터시티, 5000분의 1 기적?…준비된 노력이었다

  • 스포츠동아
  • 입력 2016년 5월 6일 05시 45분


레스터시티의 기적은 하루아침에 이뤄진 것이 아니다. 냉철한 분석과 철저한 자기관리 등 ‘준비된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사진=ⓒGettyimages이매진스
레스터시티의 기적은 하루아침에 이뤄진 것이 아니다. 냉철한 분석과 철저한 자기관리 등 ‘준비된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사진=ⓒGettyimages이매진스
‘역습축구로 승부’ 냉철한 분석
인터셉트 ‘경기당 21.5회’ 1위
철저한 선수관리…부상 단 2명


프로에서 돈(투자·연봉)과 성적이 꼭 비례하는 것은 아니지만 투자금액이 많은 구단일수록, 연봉이 높은 선수일수록 대개는 성적이 뛰어나다. ‘공은 둥글다’는 말로 이변을 기대하고, 골리앗과 맞서 싸우는 다윗에 마음이 끌리게 마련이지만 ‘부자 구단’, ‘잘 나가는 선수’가 승자의 미소를 짓는 경우가 많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도 마찬가지다. EPL이 출범한 1992∼1993시즌 이후 단 한 번 블랙번(1994∼1995시즌)이 패권을 차지했을 뿐, 나머지 시즌은 모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13회), 첼시(4회), 아스널(3회), 맨체스터시티(2회) 등 이른바 ‘빅4’로 꼽히는 부자 구단들이 돌아가면서 우승을 휩쓸었다.

그런 측면에서 2015∼2016시즌 레스터시티의 EPL 우승은 믿을 수 없는 동화 같은 스토리다. 인구 28만명의 소도시 레스터를 연고로 하는 레스터시티는 1884년 창단됐지만 그동안 1부리그와 2부리그를 오가던 그저 그런 팀이었다. 역대 최고 성적도 까마득하게 오랜 옛날인 1928∼1929시즌의 1부리그 준우승에 불과했다. 2008년에는 3부리그 소속이었고, 2014∼2015시즌 1부리그로 재승격됐지만 14위에 그쳤다. 올 시즌 개막에 앞서 유럽 베팅 전문 사이트가 전망한 우승 확률도 5000분의 1이었다. 1935년 태어나 1977년 사망한 엘비스 프레슬리가 ‘여전히 살아있을 확률’보다 더 힘들다는 분석도 나왔다.

EPL 20개 클럽 중 구단가치 순위가 18위에 불과한 가난한 클럽 레스터시티는 산전수전 다 겪은 클라우디오 라니에리(65·이탈리아) 감독의 지도력과 ‘8부리그 출신’ 제이미 바디(29·잉글랜드), 알제리 이민 2세로 프랑스 빈민가에서 자란 리야드 마레즈(25·프랑스) 등의 상상할 수 없는 활약을 앞세워 ‘사커 드림’을 일궜다.

레스터시티가 올 시즌 초반 차곡차곡 승점을 쌓으며 치고 나갈 때도 ‘곧 떨어지겠지’라고 생각한 팬들이 많았다. 그러나 ‘우리도 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똘똘 뭉친 레스터시티 선수들은 달랐다. 빅클럽들과 정면으로 맞붙어선 승산이 적다고 판단한 라니에리 감독은 점유율 축구, 패스 축구 대신 역습 축구라는 과감한 팀 컬러로 승점을 챙겨나갔다. 볼 점유율(평균 45%·18위)과 패스 성공률(70.2%·20위)은 리그 최하위권이지만, 인터셉트(경기당 21.5회·1위)와 태클 시도(22.9개·2위)는 최상위권이다.

이뿐 아니다. 기나긴 한 시즌을 치르는 동안 레스터시티에는 2명의 부상자밖에 발생하지 않았다. 이는 왓포드(1명)에 이어 EPL에서 2번째로 적은 숫자다. 철저한 선수관리를 통해 예측불가의 변수들을 최소화했다는 얘기다.

최근 뉴욕 타임스는 “레스터시티의 ‘하면 된다’는 정신이 다른 스포츠에도 확산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레스터시티가 이룬 기적이 반가운 것도 이 때문이다. 레스터시티의 성공 스토리는 ‘나는 보나마나 안돼’, ‘우리는 할 수 없어’라는 패배의식 대신 ‘누구나 노력하면 할 수 있다’는 긍정의 힘을 불어넣고 있다. 여기에 하나 덧붙이자면, ‘무조건 열심히 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레스터시티의 사커 드림은 철저한 분석과 치열한 자기관리를 통한 노력의 산물이라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 기적은 ‘준비된 노력’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김도헌 기자 dohon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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