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챔프전 못보겠더라” vs “열세 알지만 패하니 화나”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4월 15일 03시 00분


코멘트

‘익숙한 우승’ 멈추고 만난 신치용 삼성화재 단장-유재학 모비스 감독

서로의 팬임을 자처하는 신치용 삼성화재 단장(오른쪽)과 유재학 모비스 감독. 코트에서 카리스마가 넘쳤던 두 사람은 ‘손을 잡아 달라’는 요청에 “사진 찍는 게 어렵다”며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3년 전 동아일보 인터뷰로 인연을 맺은 두 명장은 가끔 따로 만나 소주잔을 기울이는 사이가 됐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서로의 팬임을 자처하는 신치용 삼성화재 단장(오른쪽)과 유재학 모비스 감독. 코트에서 카리스마가 넘쳤던 두 사람은 ‘손을 잡아 달라’는 요청에 “사진 찍는 게 어렵다”며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3년 전 동아일보 인터뷰로 인연을 맺은 두 명장은 가끔 따로 만나 소주잔을 기울이는 사이가 됐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누구도 정상에 계속 머물 순 없다. 프로배구 삼성화재 신치용 전 감독(61)과 프로농구 모비스 유재학 감독(53)이 처음 만난 것은 3년 전 이맘때. 신 전 감독이 프로배구 6연패(連覇) 및 통산 7회, 유 감독이 프로농구 통산 3회 우승을 거둔 직후였다. 이듬해 삼성화재와 모비스는 각각 7연패와 2연패에 성공하며 전성기를 이어갔다. 하지만 두 사람은 지난해 엇갈린 처지가 돼 두 번째로 만났다. 신 전 감독은 정규리그 우승을 하고도 챔피언이 되지 못한 반면에 유 감독은 프로농구 최초로 3연패(통산 5회)를 달성했다. 그리고 올해. 삼성화재와 모비스는 똑같이 플레이오프(PO) 진출에 만족해야 했다. 지난해 6월 단장이 된 신 전 감독은 1995년 삼성화재의 창단 사령탑을 맡은 이후 처음으로 팀이 결승 진출에 실패하는 것을 지켜봐야 했다. 각자의 종목에서 최고의 명장(名將)으로 꼽히는 두 사람은 어떤 생각으로 ‘남의 잔치’를 바라봤을까. 세 번째 만남에서 그 얘기부터 들었다. 》

○ “다른 팀 챔피언결정전 보기 싫더라”


삼성화재는 PO에서 OK저축은행에 2연패를, 모비스는 오리온에 3연패를 당했다. 지난해만 해도 시즌 마지막 경기까지 나섰던 그들에게 올해는 이른 휴식이 찾아왔다.

▽유 감독=4년 만에 챔피언결정전(챔프전)에 못 가니 시원섭섭했다. 아니, 섭섭한 게 더 컸다. 우승 전력은 아니라고 봤지만 막상 지니 열 받더라. 일부에서는 다음 신인 드래프트에서 상위 순번을 얻기 위해 전력을 다하지 않았다고 하는데 그건 절대로 아니다.

▽신 단장=맞다. 적당히 하려고 해도 못 한다. 그러면 당장 선수들이 감독을 불신한다. 노골적으로 ‘져 주라’고 할 수 있지 않느냐고? 말도 안 된다. 그건 감독도 아니다.

▽유=무엇보다 PO 1차전 때 1점 차로 졌다. 그 경기를 잡았다면 결과는 몰랐다.

▽신=거실에 배구 챔프전 중계를 틀어 놨기에 채널을 돌리라고 했다. 아내가 ‘당신은 20년 동안 해놓고 남이 하는 건 왜 보기 싫어 하느냐’고 핀잔을 주더라. ‘나는 그런 게 싫어 죽어라 결승에 올라갔다’고 했다.

▽유=(농구 챔프전을 봤느냐는 기자 질문에) 봤다. 그것 말곤 딱히 할 일이 없었다.

▽신=(기자에게) 그렇게 물으면 당연히 봤다고 하지. 유 감독도 솔직히 보기 싫었을 거다. 맞지 않나?

▽유=(웃음) 이제 와서 얘기지만 오리온을 꺾었어도 KCC는 못 이겼을 거다. 우리 수비로는 막을 수 없는 팀이다. 그런 점에서 오리온 추일승 감독이 잘했다. 가드 조 잭슨과 포워드 애런 헤인즈 등 키가 크지 않은 외국인 선수들을 활용하는 새로운 시도가 통했다.

▽신=맞다. 배구도 생각을 바꿔야 한다. 외국인 선수로 라이트 공격수를 선호하는데 굳이 그럴 이유가 없다. 다음 시즌에는 삼성화재부터 바뀔 거다.

○ “이기는 경기가 재미있는 경기다”


이전까지 두 명장은 “프런트가 감독의 역할에 간섭하려 들면 안 된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삼성화재의 변화를 얘기한 건 신 전 감독이 단장이 되면서 생각이 바뀌었다는 것일까.

▽신=단장 선임 후 ‘나댄다’는 말을 듣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훈련 장소도 거의 찾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운영만큼은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다. 물론 훈련과 경기는 전적으로 감독의 몫이다.

▽유=프런트가 간섭하면 안 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다만 신 부사장님(제일기획 부사장 겸 배구단장)의 경우는 다른 것 같다. 지도자로서의 경험이 풍부해 많은 조언을 해 줄 수 있다.

▽신=나와 임도헌 감독은 한 배를 타고 있다. 임 감독이 잘해야 나도 자리를 지킬 수 있다(웃음).

▽유=모비스는 ‘수비 농구’라 재미없다고 하는 분들이 있다. 하지만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공격이 안 되니까 어쩔 수 없다. ‘공격 농구’는 일률적으로 강요할 일은 아니다. 이기는 게 우선이다.

▽신=삼성화재는 외국인 선수 의존도가 높아 ‘몰빵 배구’라는 비난을 받는다. 우리도 하고 싶어 그런 게 아니다. 또 ‘몰빵 배구’도 아무나 못 한다. 기본이 갖춰져야 한다. 공격력은 단기간 훈련으로 성과를 내기 어렵지만 수비와 리시브는 노력으로 끌어올릴 수 있다. 유 감독을 좋아하는 이유가 딱 하나다. 모든 면에서 기본을 중시해서다.

▽유=좋은 점이 ‘딱’ 하나밖에 없나요?

▽신=(당황하며) 기본의 중요성을 강조하다 보니…. 나와 우리 가족 모두 유 감독 팬인데 그럴 리가 있나요.

○ “메달 위한 귀화 무의미…인식 바뀌어야”

최근 케냐 출신 마라토너 윌슨 로야나에 에루페의 귀화가 무산됐다. 그를 통해 침체에 빠진 한국 마라톤에 자극을 주려던 계획도 물거품이 됐다. 두 명장은 ‘종목이 다르다’는 점을 전제로 귀화에 대한 생각을 털어놨다.

▽유=무리할 필요는 없다. 올림픽 메달에 대한 인식도 바뀌어야 한다. 영화도 재미있으면 그만이지 꼭 상을 타야 되나. 메달을 따도 불행한 선수가 많다. 최근 엘리트와 생활체육이 통합됐는데 잘되면 좋은 선수가 많이 나올 수 있다.

▽신=동감한다. 프로 스포츠의 궁극적인 목적은 국민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다. 국제대회 성적도 중요하지만 자연스럽게 즐길 수 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져야 한다.

▽유=내가 선수일 때는 학교에서 지도자들의 월급을 줬다. 지금은 부모들이 걷어 주며 일일이 간섭한다. 체육의 뿌리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

▽신=신인 드래프트를 할 때마다 취업률이 높아졌다고 하는데 엉터리다. 3명 뽑으면 3명을 내보내야 한다. 나는 성공할 가능성이 보이지 않으면 다른 길을 알아보라고 한다. 부모들에게 욕도 많이 먹었다. 하지만 미래가 없는 선수를 데리고 있는 것은 죄다. 운동 인생은 10년이지만 남은 인생은 50년이다.

▽유=어느 분야든 사람이 중요하다. 같이 있는 사람들과 가족 같은 분위기에서 일하고 싶은데 점점 분위기가 팍팍해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

▽신=역시 ‘만수(萬手)’ 유 감독은 생각이 깊다. 나보다 더 오래 사령탑으로 남기 바란다. (신 단장은 프로 종목 단일팀 최장수인 20년 동안 감독이었다. 2004년 부임해 13년째 모비스를 이끌고 있는 유 감독은 2020년까지 장기 계약한 상태다.)

▽유=우승 횟수를 떠나 인격적으로도 아직 부사장님을 따라 가려면 멀었다. 자리를 함께 하는 것만 해도 영광이다.

▽신=영원한 승자가 없듯 영원한 패자도 없는 법. 내년에 다시 정상에서 만납시다.

▽유=우승하지 못해도 만나야죠. 이런 자리 언제든 환영입니다.
 
이승건 why@donga.com·황규인 기자
#프로배구#삼성화재#신치용#프로농구#모비스#유재학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