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연맹, 특정인맥이 장악…‘3월 33일 송금’ 등 허위기재 만연”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3월 22일 17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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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들의 급여와 훈련비를 허위로 부풀려 빼돌리고, 수영연맹 임원·감독 선임과 국가대표 선수 선발 등을 대가로 금품을 주고받은 대한수영연맹 임원 등 14명이 재판에 넘겨졌다.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1부(부장 이원석)는 횡령과 배임수재·증재 혐의로 정일청 대한수영연맹 전무이사(55) 등 수영연맹 임원 5명을 구속기소하고, 수영연맹 부회장 정모 씨를 비롯한 수영연맹 임원 5명을 불구속 기소했다고 22일 밝혔다. 또 수영장 시설 공인인증 등 이권을 보장받고 편의를 제공받는 대가로 연맹 임원들에게 수천만 원에서 억대 금품을 건넨 업체 대표 4명도 배임증재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검찰이 지난달 17일 대한수영연맹 압수수색을 시작으로 집중 수사해 34일 만에 내놓은 결과다.

●“끈끈한 특정인맥이 조직 장악…‘3월 33일 송금’같은 허위 기재 만연”

검찰은 이날 중간 수사결과를 발표하면서 “학연과 지연, 선후배 사제 관계로 얽힌 폐쇄적인 수영계에서 고질적이고 구조적으로 상납문화가 자리 잡고 있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정 이사 등 주요 연맹 이사들은 파벌을 형성해 평균 14~15년 동안 조직을 장악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특정인맥의 장기간 전횡으로 연맹 내부의 통제 또는 감사 기능이 제 구실을 하지 못한 것이 비리의 근본원인으로 꼽힌다. ‘3월 33일 송금’ ‘20012년’ 등 세밀하게 점검만 해도 내부에서 적발될 수 있는 이중계약서나 허위 훈련계획서 내역이 전혀 걸러지지 않았다는 점은 수영연맹 비리의 민낯을 여실히 보여준다. 각종 훈련비나 선수급여 지원금 등을 출연하는 지방자치 단체 체육회 또한 견제 장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국가대표 선발은 물론 임원과 감독 선임과 관련한 명확한 세부기준과 법령이 없었다는 점도 연맹 임원들의 검은 뒷돈 거래를 용이하게 했다는 게 검찰의 설명이다.

●혈세 빼돌려 도박 등 유용…검찰, “도박자금은 횡령의 사용처일 뿐”

이달 8일 강원수영연맹 공금 13억2000여 만 원을 횡령해 도박 등으로 탕진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대한수영연맹 시설이사 이모 씨(47·구속)는 정 이사에게 강원도청 우수선수 유치 등 편의를 제공하는 대가로 1억5000만 원을 건넨 사실이 확인돼 추가 기소됐다. 검찰은 정 이사가 이런 방식으로 챙긴 뒷돈이 4억5000만 원에 이른다고 보고 있다.

이 씨와 뒷돈을 빼돌려 국내 카지노 등에서 도박자금으로 사용한 혐의가 포착된 강원수영연맹 이사 2명도 함께 기소됐다. 검찰 관계자는 “횡령의 사용처로 도박자금이 소명됐기 때문에 별도로 상습도박 등의 혐의를 적용할 수는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밖에도 전남수영연맹의 공금 6억1000만원을 빼돌리고 수영장 공사 및 수구선수 선발 대가로 뒷돈 4800만 원을 챙긴 대한수영연맹 홍보이사 이모 씨(45), 2015 광주유니버시아드 대회의 경기용 기구 납품 청탁을 들어주고 2000여 만 원을 챙긴 부회장도 법정에 선다. 그러나 정 이사에게 서울시청 수영팀 감독 선임 명목으로 1억 원을 건넨 박태환 선수의 스승 노민상 전 대한수영연맹 이사는 공소시효가 완성돼 ‘공소권 없음’으로 처리됐다.

●명품 선물, 고급 차량 상납 등은 혐의 못 밝혀

검찰은 “선수들의 훈련비와 복지와 처우 개선에 사용돼야 할 국민 세금이 수영계 일부 지도자들의 부정한 뒷돈으로 거래되면서 수영 선수들이 입은 피해가 막대하다”고 전했다. 선수들은 수사 과정에서 “내 훈련비가 이렇게 사용됐다는 사실이 너무 당황스럽다”, “선생님들에게 이용당했다는 생각에 화가 난다”며 억울함을 토로한 것으로 알려졌다.

수영계 비리를 파헤치겠다며 검찰이 34일 간 110여 명을 소환조사했지만 수사로 드러난 범죄는 ‘빙산의 일각’이라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각종 언론 보도와 제보 등으로 제기된 의혹 제기가 쉽게 풀리지 않았다는 것. 일례로 정 이사에게 학부모와 또 다른 연맹 상임이사가 대표 선발 대가로 현금과 명품 머니클림을 선물로 건넸다는 점에 대해 검찰은 “교부자가 개인적 선물이었다고 진술해 그 이상으로 처벌하기 힘들었다”고 말했다.

국가대표로 선발될 경우 대학입시에서 유리한 합격 발판이 될 수 있는 만큼 임원들에게 흘러들어간 선수와 학부모의 돈도 대가성이 있을 것이라는 추측도 제기됐으나 검찰은 “대입 관련해 직접적인 금전이 오간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입장이다.

검찰 안팎에서는 이번 수사가 대한체육회 최고위층으로 확대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특히 정부의 ‘체육단체 통합’ 움직임에 반기를 든 이기흥 대한체육회 부회장에게 사정의 칼날이 겨눠질지 이목이 쏠렸지만 검찰은 “사건과 혐의에 대해 수사하지 사람에 대해 수사하진 않는다”며 세간의 의혹을 일축했다.

검찰은 앞으로도 수사 단서가 추가로 확인되면 수영계 비리를 적극 수사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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