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발리볼] PO 2차전 인터피어 비디오 판정의 교훈…‘아는 것이 힘!’

  • 스포츠동아
  • 입력 2016년 3월 16일 05시 45분


삼성화재 임도헌 감독(정면 오른쪽)이 14일 대전 충무체육관에서 벌어진 V리그 남자부 플레이오프 OK저축은행과의 2차전 4세트 도중 주심이 내린 류윤식의 인터피어(interfere·방해) 판정에 대해 재심을 요청하고 있다. 스포츠동아DB
삼성화재 임도헌 감독(정면 오른쪽)이 14일 대전 충무체육관에서 벌어진 V리그 남자부 플레이오프 OK저축은행과의 2차전 4세트 도중 주심이 내린 류윤식의 인터피어(interfere·방해) 판정에 대해 재심을 요청하고 있다. 스포츠동아DB
임도헌 감독, 룰 잘못 적용 판단 재심 요청
“인터피어 아니다” 심판위원장이 최종결정
룰 숙지한 임감독, 재심요청 모범사례 남겨


14일 대전 충무체육관에서 벌어진 ‘NH농협 2015∼2016 V리그’ 남자부 플레이오프 삼성화재-OK저축은행의 2차전에서 묘한 상황이 나왔다. 배구 룰이 얼마나 복잡한지와 더불어 V리그의 재심요청제도가 제대로만 사용된다면 꽤 유용한 제도라는 것을 한 눈에 잘 보여주는 사례다.

발단

삼성화재가 세트스코어 1-2로 뒤진 4세트 초반이었다. 2-3에서 삼성화재가 시간차 공격을 시도했다. 미끼 역할을 하는 이선규가 먼저 뜨고, 뒤따라 들어온 류윤식이 공격을 했다. 류윤식은 착지과정에서 앞으로 중심이 쏠리자 네트터치를 피하려고 네트 아래로 최대한 몸을 숙였다. OK저축은행 한상길은 블로킹을 시도했다. 한상길의 손에 맞은 공은 네트를 크게 출렁이게 한 뒤 OK저축은행의 코트로 떨어지려고 했다. 내려오던 한상길이 주저앉아 리바운드 플레이를 시도했는데, 이 공이 네트 밑에서 등을 돌린 채 있던 류윤식에 맞았다. 쉽게 보기 힘든 복잡한 상황이었다.

전개과정

주심은 류윤식의 인터피어(interfere·방해)라고 판정했다. 삼성화재는 항의했다. “인터피어가 아니다”며 재심을 요청했다. V리그 대회요강 제39조(경기 중 재심요청)의 첫 번째 항을 적용했다. ‘주심이 규칙이나 규정을 적절하게 적용하지 못했을 경우’였다. 사실 판정이 아니고 룰 적용의 잘못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삼성화재 임도헌 감독의 대응이 적절했다.

심판감독관과 경기감독관, 주심까지 모여 플레이 영상을 보며 의견을 나눴다. “규칙 적용에 대한 재심요청의 경우는 주심을 재심회의에 참석토록 요청한다”는 재심요청 규정 3항의 첫 번째를 적용했다. 쉽게 판단을 내리기 어렵게 되자, 한국배구연맹(KOVO) 김형실 경기위원장과 김건태 심판위원장까지 모였다. 재심요청 규정 6번째 사항을 적용했다. ‘규칙에 정해지지 않은 상황이 발생하면 경기·심판감독관은 관련위원회 위원장의 의견을 청취할 수 있다’는 조항을 따랐다. 적절한 조치였다. 경기 영상을 반복해서 본 뒤 경기감독관은 “인터피어가 아니다”고 발표했다. 즉, 주심의 최초 룰 적용이 잘못됐다고 판단했다.

그러자 OK저축은행 김세진 감독은 “상대의 네트터치”라고 했지만,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삼성화재의 득점으로 인정됐다. 두 감독이 ‘쿨하게’ 결정을 빨리 받아들이고 납득해 경기는 무사히 재개됐다.

팩트와 해결과정

이 상황에서 나온 팩트만 정리하면 이렇다. 첫 번째 류윤식의 네트터치 여부. ‘볼에 밀려서 흔들린 네트에 선수가 닿았을 경우는 네트터치가 아니다’는 규정에 따라 류윤식은 네트터치가 아니다. 두 번째 인터피어 여부. 상대방의 정상적 플레이를 의도적으로 방해하려는 의도가 있었는지 아닌지의 여부가 인터피어를 가리는 기준이다. 이 상황에서 한상길은 네트를 이용한 리바운드 플레이를 했는데, 류윤식에 의해 방해를 받기는 했다. 그러나 당시 류윤식은 의도적으로 상대 수비를 방해할 의도가 없었다. 공이 자연스럽게 와서 닿았을 뿐이다. 그래서 인터피어를 선언했던 최초의 룰 적용은 틀렸다. 세 번째 리플레이 여부. 공이 류윤식에 맞는 순간 볼 데드 상황이다. 즉, 랠리의 종료다. 류윤식의 몸은 삼성화재 코트에 있었다. 공이 류윤식에 맞는 순간 이미 센터라인을 넘어갔고 랠리가 종료됐기 때문에 삼성화재의 득점이라는 것이 이날 나온 최종결론이었다.

● 교훈과 문제점

올 시즌 룰 적용의 잘잘못을 놓고 많은 해프닝이 있었는데, 시즌 막판 중요한 경기에서 모범사례가 나왔다. 룰을 제대로 아는 감독이 상황을 제대로 판단해 적절히 움직였고, 감독관들도 현명하게 대응해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했다. 재심요청제도를 제대로만 쓴다면 이처럼 억울한 상황을 피할 수 있다는 것을 새삼 확인했다.

여기까지는 긍정적 교훈이지만 문제점도 나왔다. 이날 감독관석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결국 최종적으로 명확한 결정을 내린 사람은 김건태 심판위원장이었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배구 룰을 잘 아는 사람이 최종결정을 내린 것은 좋았지만, 한 사람에게 영구적으로 이런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요청할 순 없다. 더 많은 전문가들이 양성돼서 이런 상황에 여유 있게 대처해야 하는데, 그런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걱정이다.

전문위원들이 전문가답게 더 많은 배구지식을 갖춰야 한다는 필요성은 누구나 아는데, 생각만 할 뿐 실제로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선 KOVO나 배구인 모두 손을 놓고 있다. 투자와 육성 없이 전문가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최근 심판위원장의 임기를 놓고도 많은 말들이 들린다. 중요한 것은 자리가 아니다. 그 자리에 맞는 능력을 갖춘 사람이다. 그렇지 않으면 모두가 불행해진다. 중요한 경기에서 룰 적용을 제대로 못해서 문제가 되면 리그가 흔들린다. 남자프로농구에선 계시원의 실수로 2002∼2003시즌 챔피언 결정전 5차전에서 15초가 사라지는 바람에 총재가 물러난 적이 있다. 오심보다 더 무서운 것은 이 같은 진행의 실수, 룰 적용의 미숙이다. 비전문가에게 맡겨두기에는 결과가 너무 무섭다.

김종건 전문기자 marc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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